이 유
1. 사건의 개요
가. 사안의 경과
(1) 청구인은 2007. 5. 22. 농업협동조합법 위반의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하동결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국선변호인 선정신청서를 제출하였으나,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은 이를 관할 법원에 송부하지 아니한 채 피의자신문을 시행하였다.
(2) 이에 청구인은 체포적부심사를 청구하였고, 하동경찰서는 2007. 5. 23. 14:00경 위 체포적부심사 청구서와 국선변호인 선정신청서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 송부하였으며, 법원은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여 사건을 심리한 후 이를 기각하였다( 2007초적55).
(3) 청구인은 조사 끝에 일단 석방되었다가 2007. 6. 23. 법원의 체포영장에 따라 다시 체포된 후 피의자심문을 거쳐 2007. 6. 25. 구속되었다.
그러자 청구인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체포이유의 고지도 없이 영장이 집행되어 그 체포처분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하였으나, 2007. 6. 27. 법원은 이를 기각하였고( 2007초적64), 그 후 청구인은 농업협동조합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2008. 3. 5. 징역 2년의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나. 헌법소원심판 청구
청구인은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이 국선변호인 선정신청서를 법원에 즉시 제출하지 아니한 부작위가 헌법 제12조 제4항의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도주의 우려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음에도 위계에 의하여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이유를 고지하지 아니한 채 이를 집행한 경찰관의 체포처분이 헌법상 보장된 신체의 자유 및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며, 2007. 10. 9. 그 위헌 확인 및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판 단
가. 행정부작위 위헌 확인
(1) 공권력의 불행사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허용되는 것이므로, 작위의무가 없는 공권력의 불행사에 대한 헌법소원은 부적법하다( 헌법재판소 1998. 2.27. 97헌가10, 판례집 10-1, 15, 15-16 등 참조).
(2) 헌법 제12조 제4항은 본문에서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하고, 단서에서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그 체제에 비추어, 일반적으로 형사사건에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피의자나 피고인을 불문하고 보장되나, 그 중 특히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피고인에게만 인정되는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 할 것이고( 헌재 2004. 9. 23. 2000헌마138, 판례집 16-2상, 543, 555 참조), 따라서 그 헌법 규정이 피의자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 밖에 헌법상의 다른 규정을 살펴보아도 명시적이나 해석상으로 이를 인정할 근거가 없음은 물론, 더 나아가 사법경찰관이 피의자가 제출하는 국선변호인 선임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할 의무가 있다고 볼 헌법상의 근거도 없다.
뿐만 아니라 형사소송법 제33조, 제201조의2 제9항, 제214조의2 제9항은 일정한 피고인 또는 피의자심문을 받거나 체포·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한 피의자에 대하여 국선변호인을 선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고, 관계 법령을 살펴보아도 사법경찰관이 그로부터 피의자신문을 받는 단계에 있는 피의자가 제출하는 국선변호인 선정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여야 할 의무를 인정할 근거도 없다.
(3) 따라서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이 청구인이 제출한 국선변호인 선정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할 작위의무는 헌법상으로나 법률상으로도 도출되지 아니하므로, 그 부작위의 위헌 확인을 구하는 이 부분 심판청구는 작위의무 없는 공권력의 불행사에 대한 헌법소원으로서 부적법하다 할 것이다.
나. 체포처분 취소
행정처분이 법원의 재판을 거쳐 확정된 때에는, 그 행정처분을 심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법원의 재판이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함으로써 예외적으로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되어 그 자체까지 취소되는 경우에 한하여 그 행정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가 가능하고, 이와 달리 법원의 재판이 취소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행정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가 허용되지 아니한다( 헌재 1998. 5. 28. 91헌마98등, 판례집 10-1, 660, 671; 헌재 2003. 12. 18. 2003헌마589; 헌재 1998. 7. 16. 97헌마238 등 참조).
따라서 청구인이 이 사건 체포처분의 취소를 구하고 있을 뿐, 앞서 본 바와 같은 체포처분에 관한 재판인 구속적부심사 청구 기각 결정에 대하여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있지 아니함이 명백하고, 달리 법원의 위 기각 결정이 취소되었다는 사정도 보이지 아니하는 이 사건에 있어, 그 체포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부적법하다 할 것이다.
3. 결 론
그러므로 청구인의 이 사건 심판청구를 각하하기로 하여, 다음 4.와 같은 재판관 김종대의 반대의견을 제외한 나머지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4. 재판관 김종대의 반대의견(행정부작위 위헌 확인 부분에 관하여)
나는, 우리 헌법이 체포·구속을 당한 국민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그 변호인이 국선이냐 사선이냐, 달리 말하면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자력이 없느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장하였을 리 없다고 생각하므로, 다음과 같이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견해를 밝힌다.
가. 헌법 제12조 제4항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국가형벌권의 행사에 있어서 국가권력, 특히 수사기관과의 대등한 지위를 피의자·피고인에게 확보해 줌으로써 피의자·피고인의 신체의 자유를 확고하게 보장하려는데 그 의의가 있다. 그 중에서도 변호인 선임권(변호인 의뢰권)은 바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자 가장 기초적이며 핵심적인 구성부분이다. 따라서 어느 날 갑자기 체포·구속으로 일상이 차단되고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된 상태에 빠져 형사소추를 가늠하는 최초의 신문을 받게 되는 피의자에게는 적어도 국선변호인의 조력이나마 즉시 받도록 하는 것은 피의자의 신체의 자유보장을 위해 간절하고도 긴요하다. 일찍이 미국 연방대법원은 1966년 Mirranda v. Arizona 판결에서 구금된 피의자를 신문할 때에는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고 판시하였고, 독일 형사소송법은 구속심사(Haftprufung)절차에서 구두변론에 구인되지 아니한 피의자에게 변호인이 없는 경우(동법 제118조a 제2항)에 국선변호인을 선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며, 또한 국제연합의 1988년 피구금자보호원칙에서도 구금된 피의자를 위한 국선변호인의 선정을 규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헌법 제12조 제4항 본문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누구든지’, 즉 변호인을 선임할 자력이 있건 없건 모든 국민에게 인정되는 기본권이지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자력이 있는 국민에게만 인정되는 기본권이 아니다. 또 ‘즉시’, 즉 체포·구속되면 그 즉시 인정되는 기본권이지 체포적부심사청구나 구속을 위한 심문절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정되는 기본권도 아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위 헌법 조항의 문면의 뜻에도 부합할 뿐 아니라 세계인권입법의 경향과도 부합한다. 따라서 체포 또는 구속된 국민이 ‘누구든지’,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기본권이 있다고 규정한 위 헌법 조항을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자력이 있는 국민에게만, 또 절차법에서 정한 적부심사 청구나 심문절차의 개시 유·무를 기다려서만 적용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헌법 제12조 제4항의 단서에 의하여 그 같이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하나, 헌법 제12조 제4항 단서는 검사에 의하여 기소되어 형벌에 처해질 위험성이 더 큰 형사‘피고인’의 경우에는, 체포 또는 구속 여부를 불문하고,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선정해주어야 한다는 의미이지 체포·구속된 ‘피의자’에게는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는 아니다. 체포·구속된 피의자에 대해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도록 할 국가의 의무는 헌법 제12조 제4항 본문에 의해 직접 그리고 확정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므로 동항의 단서에 의해 동항 본문의 내용을 제한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나. 형사소송법 제214조의2 제10항 및 제33조의 체포된 자의 국선변호인 선임 청구권과 수사기관의 의무
헌법 제12조 제4항에 의거하여 형사소송법 제214조의2 제10항은 ‘체포 또는 구속된 피의자에게 변호인이 없는 때에는 제33조(국선변호인)를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 제33조 제2항에 의하면 법원은 ‘피고인이 빈곤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 피고인의 청구가 있는 때에는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형사소송법 제214조의2 제10항이 규정한 ‘체포 또는 구속된 피의자’를 다수의견이 전제하는 것처럼 굳이 ‘체포 또는 구속된 피의자로서 그 적부심사를 청구한 자’, ‘구속을 위한 판사의 심문을 받는 자’로 축소 해석할 것이 아니라 문면 그대로 ‘체포 또는 구속된 모든 피의자’로 해석함이 상당하고 형사소송법 제214조의2 제10항에 의해 인용되는 형사소송법 제33조 제2항도 인용되는 그대로 ‘피의자의 청구가 있는 때에는 즉시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라고 새겨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원으로서는 체포 또는 구속된 피의자가 국선변호인의 선임을 청구하면 즉시 이를 수리하여 그 당부를 판단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지배하는 영역 안에서 피의자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수사기관은 스스로 국선변호인 선임 청구권 유·무에 대하여 판단할 권한이 없는 이상, 피의자가 국선변호인 선임 청구서를 제출하면 체포적부심이나 구속을 위한 판사의 심문 때까지 이를 보류하고 있어서는 안되고 즉시 이를 법원에 제출하여 법원으로부터 허부의 재판을 받게 할 헌법상·법률상 의무가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또 혹 체포·구속된 모든 국민이 갖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보장절차에 관한 입법상 미비가 있으면 국회에 그 입법부작위를 신속히 제거할 책임이 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다. 결 론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 청구 중 행정부작위 위헌 확인 부분에 관하여는 그 작위의무가 없다고 하여 바로 각하할 것이 아니라, 그 작위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 등 다른 적법요건 및 본안에 대한 심사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재판관 이강국(재판장) 이공현 조대현 김희옥 김종대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송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