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문
서울지방검찰청 1991년 형제98417호 사건에 있어서 피청구인이 1991.10.31. 청구인에 대하여 한 기소유예처분은 청구인의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이 유
1. 사건의 개요
청구인(피의자)은 1991.9.27. 22:10경 서울 종로구 와룡동 소재 비원앞 삼거리 노상에서 음주운전(음주감지기에 의한 측량결과 혈중알콜농도 0.05퍼센트)으로 적발되었으나, 음주한 사실이 없다고 범행을 극구 부인하였다. 그런데도 경찰은 같은 해 10.14. 위 범죄사실이 인정된다 하여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였고, 피청구인은 같은 달 31. 피의사실은 인정되나 그 음주량이 소량인 것으로 판단된다 하여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하였다. 청구인이 피청구인의 이러한 피의사실의 인정에 불복하여 1992.1.13.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것이 바로 이 사건이다.
2. 당사자의 주장
가. 청구인의 주장요지
(1) 청구인은 그 날 음주한 사실이 없다. 그런데도 음주감지기에 0.05라는 수치가 나왔으므로 청구인으로서는 그 음주감지기가 고장이 난 상태였거나 아니면 경찰이 단속건수를 채우기 위하여 이를 일부러 조작해 놓은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었고 따라서 음주운전자 적발보고서에의 서명날인조차 거부하였다.
그 후 청구인은 자기의 무고(無辜)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단속경찰관 자신으로 하여금 그 음주감지기를 한번 불어보도록 요구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음주감지기에 의한 측정을 요구하기도 하였으나 모두 거절되었고/ 다른 한편 조사경찰관에 대하여 청구인의 비용부담으로 그 인근 어느 병원에든지 같이 가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혈액 검사를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마지막으로는 경찰서내에서라도 청구인의 혈액을 채취해 두었다가 차후에 검사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것마저 모두 묵살당하였다.
그래서 청구인은 그날밤 경찰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바로 그 길로 그 인근에 있던 녹십자의원에 가서(그 다음 날인 9.28. 00:43경) 청구인의 혈액을 채취하였고 이를 경찰에 제출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감정한 바에 의하면 청구인의 혈액에서 알콜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아니하였다. 이로써 청구인이 무고함은 충분히 증명된 것이다.
(2) 사건의 경위가 이러하다면, 피청구인은 위와 같이 청구인이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사건에 있어서 의당 피의자인 청구인을 소환하여 조사를 하고 경찰의 수사가 정당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행하여진 것인지의 여부를 면밀히 밝혀 본 다음 범죄의 혐의의 유무를 판정해야 할 것인데도 아무런 조사도 한 바 없이 경찰의 의견서 기재대로 음주운전이라고 자의적으로 피의사실을 인정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청구인은 헌법 제10조에 규정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권·인격권과 헌법 제11조 제1항에 규정된 평등권에 기하여 국가기관인 경찰과 검찰에 대하여 차별없는 성실한 수사를 요구할 권리가 침해되었고, 그 결과 법관에 의하여 정식 재판을 받을 길도 막히게 되었으므로 헌법 제27조 제1항이 규정하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침해당한 것이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요지
(1) 본안전 항변
기소유예처분은 범죄의 혐의는 인정되지만 기소편의주의에 따라 그 소추를 유예하는 처분으로서 그 처분을 받은 피의자에게 아무런 불이익도 주는 바 없을 뿐만 아니라 기소유예처분에 불복이 있는 피의자는 검찰에 수사재기신청을 할 수도 있고 진정서를 제출하여 검사의 직권발동을 촉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처분을 번복시킬 수 있다 할 것이므로 기소유예처분은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각하되어야 한다.
(2) 본안에 관한 답변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에는 청구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수사미진 또는 형평을 잃은 증거판단 등의 잘못이 없으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없다.
(가) 사건당일 청구인을 음주운전으로 적발할 당시 음주감지기(고유번호 10323호)로 두번이나 음주량 측정을 하였으나 모두 같은 수치(0.05퍼센트)가 나왔으며 두번 모두 1회용 빨대를 새로이 개봉하여 사용하였고, 그 음주감지기는 1991.9.19. 검열을 받은 것이며 청구인이 그 신뢰도를 의심하기에 이 사건 다음날인 같은 달 28. 재차 검열을 받았으나 역시 그 성능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나) 음주운전자 단속시 음주측정에 이의가 있는 피의자가 그 혈액채취를 요구하였다고 하여 이에 모두 응하기는 현실적으로 곤란하고(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만 그 감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검찰은 피의자인 청구인은 물론 그 운전차량 동승자인 청구외 김○영도 소환 조사한 사실이 있으며, 청구인이 제출한 혈액을 감정한 결과 비록 알콜이 검출되지는 아니하였으나 이는 청구인이 음주측정을 하고 약 2시간 30분이 경과된 후에 그 혈액을 채취한 것이므로 이것만으로는 청구인의 주장처럼 그가 전혀 음주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부족하다.
(다) 제반증거를 종합하건대 피의사실에 대한 증명은 충분하나, 피의자가 초범이고 그 직업이 세무사인점 및 음주감지기의 정확성에 대한 약간의 편차를 참작하여 청구인에 대하여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이다.
3. 판단
가. 피청구인의 본안전 항변에 대하여
검사의 기소유예처분도 헌법소원심판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당 재판소의 판례이고(당 재판소 1989.10.27. 선고, 89헌마56 결정 등 참조)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피의자의 수사재기신청 또는 진정서제출은 사실상 검사의 직권발동을 촉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그것이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단서 소정의 다른 법률에 규정된 구제절차에 해당한다거나 헌법소원심판청구에 대한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피청구인의 본안전 항변은 이유없다.
나. 본안에 관하여
(1) 청구인이 1991.9.27. 22:10경 서울 종로구 와룡동 소재 비원앞 삼거리 노상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때 음주감지기에 나타난 숫자가 0.05(혈중 알콜농도 0.05퍼센트)이었던 사실, 청구인이 자기는 그날 음주한 사실이 없다고 범행을 극구 부인하면서 음주운전자 적발보고서에의 서명날인조차 거부하는 한편 자기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경찰에서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음주감지기의 성능에 관한 조사와 혈액채취에 의한 혈중 알콜농도의 검사를 강력히 요구하였는데도 이 요구가 모두 묵살된 사실, 그러자 위 음주측정시점으로 부터 약 2시간 30분후 청구인 스스로 그 경찰서 인근에 있던 병원(녹십자의원)으로 찾아가서 채혈을 하고 이것을 경찰에 제출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감정을 한 결과 그 혈액에서 알콜이 검출되지 아니한 사실 등은, 당사자간에 다툼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청구인(피의자)으로서는 당시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자기의 무고함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과학적인 입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도로교통법 제107조의2 제1호, 제41조 제1항, 제3항, 도로교통법시행령 제31조의 규정들에 의하면 혈중 알콜농도가 0.05퍼센트 이상인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한 경우에만 도로교통법상의 이른바 주취중(酒醉中) 운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청구인의 경우 음주감지기(그 음주감지기의 성능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가정하더라도)에 나타난 그 혈중 알콜농도 0.05퍼센트는 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최저수치(최소음주량)임이 명백하고, 이에 더하여 피청구인도 앞에서 인정하였듯이 음주감지기의 정확성에 대한 약간의 편차도 고려한다면, 조사를 더 해 보지 아니하고서는 이 사건 청구인의 경우에 위 범죄가 인정된다고 쉽사리 단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안이 이러하다면, 단지 수사 및 소추기관만이 아니고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로서는, 피의자에게 범죄의 혐의가 없다고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하는 경우라면 또 모르되, 피의사실이 인정된다고 단정하려면 적어도 한번쯤은 피의자를 소환하여 그 변소를 들어보고 그에게 유리한 증거제출과 증거설명의 기회를 부여하는 한편 피의사실에 부합하는 증거와 그에 배치되는 증거의 신빙성에 관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의 조사는 해 보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아무런 조사도 한 바 없이 만연히 피의사실은 인정되나 그 음주량이 소량인 것으로 판단된다는 이유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하고 말았다(피청구인은 피의자인 청구인은 물론 그 운전차량 동승자인 청구외 김삼영도 소환, 조사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하나, 기록상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위 기소유예처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현저한 수사미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2) 이 사건의 증거자료인 수사기록(서울지방검찰청 1991년 형제98417호 불기소사건기록)에 의하면, 사법경찰관 작성 의견서 기재의 범죄사실의 요지는 피의자(청구인)는 1991.9.27. 22:10경(음주감지기에 의한 음주측정시점) 서울 4나 3136호 피아트 승용차를 혈중알콜농도 0.05퍼센트의 주취상태로 서울 송파구 송파2동 소재 동사무소 앞길에서 종로구 와룡동 소재 비원앞길(음주측정장소)까지 운전하였다는 것이고, 위 피의사실에 대한 피청구인의 이 사건 기소유예결정의 이유는 “본건 피의사실의 요지는 사법경찰관 작성 의견서 기재의 범죄사실과 같은바, 수사한 결과 피의사실은 인정되나 피의자가 음주측정후 약 2시간 30분후에 서울 종로구 연건동 198의2 소재 녹십자병원에서 혈중알콜농도를 측정키 위하여 채혈하여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의뢰한바 감정결과에 의하면 혈중알콜이 검출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음주량이 소량인 것으로 판단되어 굳이 처벌하기 보다는 경고장을 발송한 후 소추의 처분을 유예함이 상당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함에 있어 청구인에 대한 위 음주측정시점으로부터 약 2시간 30분후에 채취한 청구인의 혈액에서 알콜이 검출되지 아니한 사실과 사람의 혈중 알콜농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산화감소된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임이 분명한 데, 이에 이 사건 음주운전 적발 경찰관 안○기 작성의 진술서 중 경찰이 음주측정에 사용하고 있는 알콜농도계산법에 의하면 사람의 혈중 알콜농도는 음주후 30분에 최고도에 이르고 그 후에는 1시간마다 0.01퍼센트씩 점차 산화감소 된다는 취지의 기재부분(피청구인이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함에 있어 이 부분 기재를 배척한 것으로는 보여지지 아니한다)을 보태어 보면, 이 사건은 범죄의 혐의가 없다 하여 무혐의처분을 하였어야 옳은 사안이 아니었던가 하는 강한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위 기소유예결정의 이유에서 인정하였듯이 이 사건 음주측정시점으로부터 약 2시간 30분 후에 채취한 청구인의 혈액에서 알콜이 전혀 검출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면, 앞서 본 알콜농도계산법에 비추어, 청구인은 그날 전혀 음주한 사실이 없었거나 가사 음주한 사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 음주측정 당시 그 혈중 알콜농도는 약 0.025퍼센트 또는 0.03퍼센트 이하이였을 것임이 경과시간(약 2시간 30분)의 계산상 명백하여, 혈중 알콜농도가 0.05퍼센트 이상인 경우에만 성립하는 주취중운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이, 청구인의 채혈시점이 위 인정과 다르다든가 그 혈액의 채취, 보관, 운반 및 검사의 과정에 어떤 흠이 있었다든가 또는 위에서 본 알콜농도계산법에는 결함이 있어 이를 믿을 수 없다든가 기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있었음에 관한 아무런 이유설시도 없이, 만연히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때 청구인의 혈중 알콜농도가 0.05퍼센트이었다는 피의사실을 인정한 것은,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이유모순 또는 이유불비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3) 위와 같이,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에는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현저한 수사미진과 중대한 이유모순 또는 이유불비의 잘못이 있어 그 처분은 극히 자의적(恣意的)인 검찰권의 행사라 아니할 수 없고, 그로 말미암아 다른 형사사건과 차별 없는 공정하고 성실한 수사를 받을 청구인의 기본권 즉 평등권이 침해되었고 그 결과 헌법 제27조 제1항 소정의 법관에 의하여 재판을 받을 권리도 침해된 것임이 명백하다.
4. 결론
그렇다면 청구인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있으므로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2항, 제3항에 따라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1992. 6. 26.재판관 조규광(재판장) 변정수 김진우 한병채 이시윤 최광률 김양균 김문희 황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