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결정
사건92헌마26 한글전용초등국정교과서편찬지시처분에대한헌법소원
청구인유 정 기 외 4인
청구인들 대리인 변호사 ○○○
공동소송참가인유 희 열 외 1인
공동소송참가인들 대리인 변호사 홍은표
주 문
청구인들 및 공동소송참가인들의 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한다.이 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청구인들은 국민학교때부터 한자교육이 행하여져야 하고 그러기 위하여는 국민학교(교육법 개정으로 명칭이 초등학교로 변경되었으나 아래에서는 편의상 "국민학교"라 한다) 국어교과서에 한자를 혼용하여야 하는데, 문교부(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명칭이 교육부로 변경되었으나 아래에서는 편의상 "문교부"라 한다) 편찬, 발행의 "1987년도 1종도서 편찬 세부계획(유치원·국민학교)" (이하 "이 사건 세부계획"이라 한다)에 의하여 국민학교 국어교과서에 한글만을 전용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 세부계획이 헌법 제31조에 규정된 청구인들의 교육권 내지 그 자손들의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1992. 2. 10.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공동소송참가인들은 청구인들과 같은 이유로 8.3. 공동청구인으로서 참가신청을 하였다.
(3) 보조참가인들은 3.16. 피청구인을 위하여 보조참가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국민학교 국어교과서에 한글을 전용하게 된 근거인 이 사건 세부계획에 포함된 "8. 1987년도 1종도서 편찬지침"의 "나. 집필지침, 1) 일반지침, 가) 교과서, (21) 표현, 표기의 적합성 " 중 " ㉮ 문장은 한글로 쓰되, (표준말로 간결·평이하게 서술하고 높임말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맞춤법은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야 한다)"라는 부분(이하 "이 사건 집필지침"이라 한다)이 청구인들 및 공동소송참가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이다.
2. 청구인들 및 공동소송참가인들의 주장과 관계기관의 의견
가. 청구인들 및 공동소송참가인들의 주장
(1)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에게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였고, 교육법 제4조는 교육의 교재는 피교육자로 하여금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제93조는 국민학교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규정하였다.
한편 우리나라는 5천년 동안 한자문화권에 속해오면서 전통문화가 형성되었고, 또 우리말의 70%가 한자로 이루어짐으로 해서 아직도 신문 등의 각종 발행물에 상당수의 한자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므로 한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언어생활 내지는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작게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여 참다운 언어생활을 하게 함으로써 개개인의 인격을 발현시켜 참다운 국민이 될 수 있도록 하고, 크게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킴은 물론 한자를 어릴 때부터 교육하는 북한의 실정에 비추어 장차 통일한국의 어문통일작업을 위해서 한자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어릴 때부터 길러주어야 할 것인바, 이는 국민학교에서부터 적어도 일상생활에 자주 쓰이는 한자 500자 내지 1,000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고, 또 위와 같은 국민학교의 교육목표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원래 훈민정음도 한글만의 전용을 위하여 창제된 것이 아니었으며, 한글만을 전용할 경우 국민지성의 저하, 교육효과의 감퇴, 국어음의(音意)의 혼란, 현실적응능력의 불비, 학술발전의 저해, 민족문화 전통말살, 동양문화권에서의 고립 자초 등의 폐해도 생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세부계획은 국민학교 국어교과서의 편찬에 있어 한글만을 전용하여 결과적으로 한자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게 하고 있는바, 이는 결국 청구인들 및 공동소송참가인들의 학습권 내지 교육수혜권을 침해하는 동시에 헌법 제9조의 전통민족문화창달권 및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다.
(2) 이 사건 세부계획은 교육법에 근거하여 문교부장관의 국민학교 교과과정 및 교과서 작성권한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사실상 대외적 효력이 있는 행정규칙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고, 공동소송참가인들은 이를 1992.8.1.경에야 알았으므로 그들의 이 사건 헌법소원은 적법한 청구기간내에 제기된 것이다.
나. 피청구인의 의견
(1) 이 사건 헌법소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부적법하므로 각하되어야 한다.
(가) 청구인들 및 공동소송참가인들은 "1987.5. 문교부에서 정한 국민학교 교과서 한글전용표기 1종도서 편찬 세부계획"이 헌법 제31조의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 헌법 제9조의 전통문화 창달권 및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을 각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바, 그들이 주장하는 "1987.5. 문교부에서 정한 국민학교 교과서 한글전용표지 1종도서 편찬 세부계획"이란 존재하지 않고 또 그것을 이 사건 세부계획으로 본다 하더라도 그중 어느 부분이 위헌인지 특정되지 않는다.
(나) 이 사건 세부계획은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 제5조와 문교부고시 제87-9호에 의한 제5차 국민학교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국민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서명, 편찬기관, 편찬추진일정, 소요예산, 교과서 집필을 위한 일반 집필지침과 교과서별 집필지침을 수록한 행정부 내부의 문서에 불과하여 공권력의 행사라고 볼 수 없다.
(다) 가사 이를 공권력의 행사로 보더라도 이에 의하여 기본권의 침해를 받는 자는 초등교육을 받는 국민학생 자신들이라 할 것이고, 따라서 청구인들 및 공동소송참가인들의 기본권은 이 사건 세부계획으로 직접 침해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에게는 자기관련성과 권리침해의 현재성, 직접성이 없다.
(라) 이 사건 세부계획에 대한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단서가 정하는 다른 법률에 의한 구제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마) 이 사건 세부계획은 1987.5.경 작성되었고 6.30. 문교부고시 제87-9호로 고시된 것이므로, 청구인들이나 공동소송참가인들은 적어도 그 내용을 그 무렵 알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공동소송참가인들의 경우는 늦어도 그들의 자녀들이 국민학교에 입학한 1987. 3.이나 1988.3.경 이를 알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청구인들이나 공동소송참가인들로서는 헌법재판소의 개소일인 1988.9.19.부터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이 규정하는 60일 또는 180일 이내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여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훨씬 늦은 1992.2.10.과 8.3. 이 사건 헌법소원을 제기하거나 공동소송참가신청을 하였으므로 청구기간이 도과되었다.
(2) 가사 이 사건 헌법소원이 적법하다 하더라도 아래와 같은 이유로 이유없어 기각되어야 한다.
국민학교 국어교과서에 한글만을 전용할 것인가, 한자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교육정책의 문제이지 헌법 제31조 제1항이 규정하는 교육권이나 균등 교육을 받을 권리 내지 행복추구권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헌법 제31조 제1항은 다만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 것일 뿐 어떠한 교육내용까지 요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정책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 국어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사용기능의 신장과 국어에 관한 초보적인 지식의 습득/ 다양한 문학 작품의 감상을 지도하는 것을 중점으로 하여 국어생활을 바르게 하고, 국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가르친다는 국민학교 국어교과의 목표에 비추어 볼 때 국민학교 국어교과서를 우리 글자인 한글로 편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한글전용에관한법률까지 들먹일 필요없이 엄연히 우리의 공용문자는 한글임이 명백하고/ 다만 문화생활의 사회적 현실과의 조화상 한자교육이 필요한 것인데 민족의 이상을 실현하고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하여는 한글전용을 바탕으로 한자교육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고 문교부는 이러한 문자교육정책을 1970년 이래 일관되게 추진하여 오고 있으며, 중학교부터는 한문교과를 개설하여 실생활에 활용될 수 있는 한자는 물론 우리 선인들과 생각을 같이 할 수 있는 기초적인 한문 문장까지 가르치고 있고, 국민학교에서도 특활시간 등을 통해 학교장 재량으로 한자지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말의 70%가 한자라고는 하지만 이는 사전에 등록된 말이고, 실제로 한글학회에서 국민학교 국어교과서를 조사해보니 한자어가 30%에 지나지 않았으며,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오늘날 한글만을 사용한다 하여 불편을 거의 느끼지 않을 만큼 되었으므로, 앞으로 이러한 우리의 말과 글을 더욱 갈고 닦아서 한자의 도움이 없는 한글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이상이라고 볼 때 국민학교 국어교과서에서 한글만을 전용하도록 하는 이 사건 세부계획은 적법하고도 타당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한자교육은 한국이 국한혼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후를 대비하여 중학교에 한문 교과를 설치하여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 뿐이다.
다. 보조참가인들의 의견
공동소송참가인들의 참가신청이 부적법하다고 주장하는 외에는 대체로 피청구인의 의견과 같다.
라. 법무부장관의 의견
헌법 제9조는 국가의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및 민족문화 창달의 의무를 규정하여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문화국가의 원리가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의 하나임을 선언한 것으로서 그 내용과 체계상 위 규정으로부터 이른바 전통민족문화창달권과 같은 기본권이 파생되는 것은 아니며, 또 헌법 제31조 제1항의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란 자신의 일신전속적인 수학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으며 성별·신앙·사회적 신분 등에 의하여 교육을 받을 기회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이에는 사회권적 측면도 내포되어 있어 국가에 대하여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도록 교육시설을 설치, 운용하고 장학제도를 시행하는 등 교육의 외적 조건을 정비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된다 할 것이나 이로부터 국가로 하여금 특정한 내용을 교육하여 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초등교육인 국민학교 교육과정에서 한자를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학생들의 수학능력/ 다른 교과과정 등을 감안하여 정할 교육정책상의 문제이지 사법판단을 통하여 정하여질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밖에는 대체로 피청구인의 의견과 같다.
3. 판 단
먼저 직권으로 청구인들 및 공동소송참가인들의 심판청구가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본다.
이 사건 세부계획과 같은 1종 교과서 편찬지침은 문교부가 매년 새로이 작성하는 것으로서 새로운 지침내용이 작성되면 원칙적으로 종전의 지침은 더이상 교과서 편찬의 준거가 될 수 없게 되며, 특히 그 치침내용의 중요한 부분이 변경된 경우에는 종전의 지침은 그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문교부는 1987년 이 사건 세부계획 이후에도 매년 새로 세부계획을 작성해 오다가 1993.2.23. "1993년도 1종도서 편찬 세부추진계획(유치원·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에서 이 사건 심판대상인 집필지침 중 "문장은 한글로 쓰되"라는 부분을 삭제함으로서 문제가 되어온 한글전용의 근거를 없애버렸다.
그렇다면 청구인들 및 공동소송참가인들의 심판청구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므로 각하하기로 하여 관여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1996.12.26.재판관 김용준(재판장) 김진우 김문희 황도연 이재화 조승형 정경식 고중석 신창언(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