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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시사항

검사(檢事)의 불기소처분(不起訴處分)으로 인한 기본권침해(基本權侵害)가 인정(認定)된 사례(事例)

재판요지

의사(醫師)가 환자(患者)를 진단(診斷)하고, 진단이후(診斷以後) 사망시(死亡時)까지의 처리방법(處理方法)에 있어서 의심스러운 점이 있음에도, 검사(檢事)가 이러한 중요(重要)한 사항(事項)에 대하여 조사(調査)를 현저(顯著)히 소홀(疏忽)히 한 채 사건을 종결한 것은 결국 검찰권(檢察權)을 행사(行使)함에 있어 고소인(告訴人)을 차별대우(差別待遇)하여 헌법(憲法) 제11조 제1항에서 보장된 그의 평등권(平等權)을 침해(侵害)하고 또한 헌법(憲法) 제27조 제5항에서 보장(保障)된 재판절차진술권(裁判節次陳述權)을 침해(侵害)한 것에 해당(該當)된다. 재판관 한병채, 최광률, 김문희의 반대의견(反對意見) 검사(檢事)가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쳐 자의적(恣意的)으로 수사(搜査)를 한 경우와 같이 현저(顯著)히 정의(定義)와 형평(衡平)에 반(反)하는 수사(搜査)를 하였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닌 단순한 수사소홀(搜査疏忽)에 대하여는 헌법소원제도(憲法訴願制度)를 통하여 헌법재판소(憲法裁判所)가 관여(關與)할 일은 아니다.

사건
90헌마45 불기소처분에대한헌법소원
청구인
박 ○ 순
대리인 변호사 ○○○ (○○)
피청구인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판결선고
1990. 12. 26.

주 문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89형제48916호 사건에 있어서 검사가 1989.7.28. 피의자 송○수에 대하여 한 불기소처분은 청구인의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

이 유

1. 이 사건 기록과 증거자료(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1989형제7892, 48916호 수사기록)에 의하면 청구인은 피해자인 망 박○식의 누님으로서 피고소인 송○수를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고소하였는데 고소사실의 요지는, 박○식이 1988.10.9. 11시 30분경 심한 복통으로 피고소인 송○수가 당직 의사로 근무중이던 서울 강동구 천호동 소재 강동가톨릭병원에 입원하였다가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하고 사망하였는 바, 피해자 박○식의 사망은 피고소인 송○수의 무성의한 진료로 인한 것으로서 특히 송○수는 1988.10.9. 16시경 환자의 증상을 횡격막탈장으로 진단하여 환자가 위급한 상태에 있음을 알았으면 자신이 직접 수술할 능력이 없는 송○수로서는 고속버스편으로 대구를 출발하여 19시경에 고속버스 동부터미널에 도착예정이라는 외과과장 장○호만을 무작정 기다릴 것이 아니라 조속히 다른 병원에 연락을 취하여 긴급히 수술을 받도록 해 주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대로 방치해 둠으로써 박○식을 사망케 한 것이니 수사하여 송○수를 엄중히 처벌하여 달라는 것이었고,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는 수사한 끝에 피의자 송○수에게 잘못이 없다고 하여 1989.7.28.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청구인은 서울고등검찰청과 대검찰청에 차례로 항고 및 재항고를 하였으나 그것이 모두 기각되자(1990.2.7.자 재항고 기각결정이 1990.2.10. 청구인에게 송달되었음)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검사의 불기소결정 이유는, “피의자는 1989.10.9. 11:30경 환자 박○식이 피의자가 당직의사로 근무중인 서울 강동구 천호동 소재 강동가톨릭병원 응급실에 와서 복통을 호소하여 환자에게 병에 관한 기본적인 질문을 한 후 혈압, 맥박, 체온, 호흡수 등을 검사한 결과 정상이었으나 계속적인 복통을 호소하여 복막염으로 의심하고 엑스레이 촬영 및 피검사를 하였으나 복막염이라고 확신할 만한 소견이 보이지 않아서 환자의 보호자에게 일단 입원을 하여 관찰 및 추가검사를 하여 정확한 병명을 알아 보자고 한 후 그날 13:00경 입원을 시키고 계속 관찰을 하였는데 다른 특별한 이상은 없고 환자가 계속 심한 복통을 호소하여 진통제주사 및 탈수방지를 위한 수액요법, 산소공급을 하다가 동일 16:00경 엑스레이 촬영 및 재진 결과 환자의 증세를 횡격막탈장으로 진단하고 환자의 보호자에게 위와 같은 진단결과를 설명하여 수술여부에 관한 동의를 받아 간호사에게 즉시 수술준비를 시킨 다음 환자를 수술할 외과과장 장○호 집에 연락을 하였으나 마침 그날이 일요일이라 외출중으로 그날 19:00경 병원에 올 수 있다고 하여 그 시간까지는 환자에게 별이상 없을 것으로 판단하 였으나, 환자의 계속적인 복통호소 등 좀 더 빠른 수술을 위하여 성남에서 병원을 하고 있는 정○명에게 수술의뢰를 위하여 그날 17:00경 연락을 하였으나, 동 병원에서 퇴근을 하였으니 30분 있다가 집으로 연락을 하라고 하여 기다리다가 다시 연락을 하였으나 연락이 되지 아니하던 중, 환자보호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강력히 요구하여 피의자가 인턴으로 근무하였던 한양대학병원에 연락을 하고 앰뷸런스를 이용, 동 병원에 후송조치를 하게 되었는데, 앰뷸런스의 산소호흡기가 제대로 작동되는 것을 확인한 후 환자를 태워보냈다고 진술하면서 피의자는 의사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변소하는 바, 당시 간호원인 참고인 박○옥, 동 고○금, 동 이○숙의 각 진술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사 이○성 작성의 감정서, 부검결과에 따른 질의회보, 엑스레이 판독의뢰에 대한 회보의 각 기재내용도 이에 부합되고 이와 다른 고소인의 진술만으로는 피의자가 환자의 증세가 횡격막탈장이라고 확진하기까지의 과정 및 확진 이후의 환자에 대한 조치에 있어 형사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그 외 위 피의사실을 인정할만한 다른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3. 판단하건대, 가) 피의자 송○수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사건 수사기록 그중 특히 검사가 증거로 채용한 사법경찰리 및 검사 작성의 송○수에 대한 각 피의자 신문조서, 참고인 백○옥, 고○금, 이○숙에 대한 각 진술조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사 이○성 작성의 감정서, 부검결과에 따른 질의회보, 엑스레이 판독의뢰에 대한 회보를 비롯하여 참고인 박○순, 노○순, 전○남에 대한 각 진술조서의 기재내용 및 송○수 작성의 박○식에 대한 의무기록지의 기재 등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서울 강동구 하일동 소재 우석콘크리트회사에서 일하던 피해자 박○식(1952.9.3.생, 사건당시 36년 1개월)이 1988.10.9. 11시경 갑자기 심한 복통을 일으켜 그의 처 노○순은 위 공장의 봉고트럭운전자 전○남과 함께 위 봉고트럭에 방○식을 태우고 11시 30분경 서울 강동구 천호동 소재 강동가톨릭병원으로 가서 환자를 부축하고 응급실에 들어갔다. 응급실 당직의사인 이 사건 피의자 송○수는 우선 간호사를 시켜 활력증상(혈압, 맥박, 호흡, 체온)을 점검하게 하고 환자의 가슴과 배에 대하여 엑스선 사진을 찍고 혈액검사를 한 다음 12시 10분경에 링겔주사를 시작하였는데 엑스선 사진으로 병을 알아낼 수 없자 코를 통하여 위장에 튜브를 삽입하여 공기를 주입하고 나서 13시경 다시 가슴부분에 대하여 엑스선 사진을 찍고 두번에 걸쳐 췌장염 검사를 하였으나 위와 같은 과정에서도 환자가 심한 복통을 호소하므로 진통제근육주사를 놓았으며 그래도 환자가 계속 복통을 호소하자 13시 30분경 다시 진통제주사를 놓고 심전도검사를 하였다. 그때까지도 확실한 병명을 알아내지 못하였으나 의사 송○수는 환자의 아픈 상태로 보아 일응 장천공에 의한 범발성복막염을 의심한 채 또 다# 시 진통제주사를 놓고 환자를 응급실에서 병실로 옮기고 간호사로 하여금 환자의 증세를 살피도록 하였다. 위와 같은 다량의 진통제주사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병실에 와서도 계속 심한 복통과 구토증 등을 호소하면서 침대에 누워있지도 못하고 배를 움켜쥔 채 침대 옆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신음을 하였다. 그러다가 15시 40분경 다시 엑스선사진을 찍고 나서 의사 송○수는 16시경 환자의 왼쪽 가슴부분의 횡격막탈장(흉강과 복강의 경계를 이루는 근육의 간막에 틈이 생겨 그 부분을 통해서 복감안의 위나 장들이 흉강으로 들어와 심장이나 폐 등을 압박하여 호흡곤란이나 구토·구역질 등의 증상을 일으키고 장에 피가 통하지 못하여 장괴사증 등이 생기는 증세)을 발견하고 조속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당일은 공휴일(한글날)이어서 위 병원에는 응급실 당직의사인 송○수와 다른 의사 한 사람과 엑스선기사 한 사람 그리고 간호사 몇 사람만이 출근하였을 뿐이고 의사 송○수나 또 다른 의사 한 사람은 외과 전문의사가 아니어서 도저히 수술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므로(송○수는 1986.2.에 일반의사 면허를 얻고 1987.2. 인턴을 수료했을 뿐 전문의 과정을 밟지 아니했다) 의사 송○수는 환자를 수술할 외과과장 장○호 집에 전화연락을 하였더니 그는 대구에 내려가 있어 고속버스편으로 19시경에야 고속버스 동부터미널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하므로 의사 송○수는 환자의 보호자들(환자의 처 노○순과 누님 박○순)에게 그와 같은 실정을 말하면서 빨리 수술을 해야 하나, 24시간 안에 사망할 만큼 그렇게 화급을 요하는 병이 아니니 외과과장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는 한편, 성남시에서 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의사 정○명에게도 전화를 하였지마는 그 사람도 출타중이어서 연락이 되지 못하였으나, 수술준비를 하고 외과과장 장○호가 도착하거나 아니면 그 이전이라도 의사 정○명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환자 박○식은 더욱 심한 고통# 을 호소하면서 16시 15분경부터는 호흡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17시경에는 호흡곤란이 생겨 점점 그것이 심해지므로 의사 송○수는 17시 30분경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겨 산소호흡을 시켰으나 환자의 용태가 점점 악화되어 갔다. 그러자 보호자들은 의사 송○수에게 격렬한 항의를 하였고 의사 송○수는 그때서야 다른 병원에 옮기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고 한양대학부속병원과 연락을 하여 그곳으로 옮기기로 하고 환자를 병원 앰뷸런스에 싣고 18시 30분경 위 병원을 향하여 출발하였으나, 그 병원에 도착할 무렵 18시 45분경 환자는 심한 고통을 호소한 끝에 앰뷸런스안에서 죽고 말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사 이○성)에서 시체를 해부해 본 결과 사망원인은 횡격막탈장으로 인한 장괴사 및 심장압박에 인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1988.10.9. 16시 횡격막탈장으로 진단된 후라도 신속히 수술을 하였더라면 박○식은 사망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위급한 중환자를 앰뷸런스로 다른 병원에 이송할 때에는 의사나 간호사가 반드시 차에 동승하는 것이 상례임에도 불구하고 의사 송○수는 병원에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의사나 간호 사를 동승시키지 아니했던 까닭에 한양대학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산소호흡기가 제대로 가동되었었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형편이다. 나) 결국 망 박○식은 1988.10.9.11시 30분 강동가톨릭 병원에 가서 당직의사 송○수로부터 진료를 받기 시작하여 그날 18시 30분 한양대학병원으로 옮기기 위하여 가톨릭병원을 떠나기까지 7시간 동안을 사망원인이 된 병(횡격막탈장)에 대하여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입원실에서 고통만을 겪다가 앰뷸런스로 다른 병원에 이송되던 중에 사망한 것인데 그날 11시 30분부터 16시까지 4시간 30분간은 병명을 알아내기 위해서 시간을 소비하였고 16시부터 18시 30분까지 2시간 30분간은 수술할 의사를 기다리느라고 소비한 시간이었다. 앞에서 인정한 것처럼 환자 박○식은 병원에서 위와 같이 오래 지체하지 않고 일찍 수술하였더라면 죽지 아니할 사람이었는데 오래 지체함으로써 횡격막탈장으로 인한 장괴사 및 심장압박으로 사망한 것이므로 의사 송○수가 위와 같이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 7시간 이상이나 끌고 있었던 것에 대하여 관연 검사가 설명한 것처럼 의사로서의 잘못이 없었던 것인가에 대하여 본다. 첫째, 피의자 송○수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86.2. 일반의사 면허증을 얻었으며 1986.3.부터 1987.2.까지 1년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수련의(인턴) 과정을 거치고 1987.3.부터 천호동 소재 가톨릭병원에서 월급 120만원을 받는 일반의사(당직의사)로 근무해 왔으며 그는 1961.9.29.생으로서 1988.10.9. 현재 의사경력 1년 6개월 밖에 되지 않는 27세의 나이 어린 의사였다. 따라서 그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 응급환자가 왔을 경우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환자는 직접 처리하고 자신이 처리할 수 없는 중환자는 과장(전문의)에게 연락하여 지시를 받고 처리해오고 있었다(수사기록 119쪽). 그런데 환자 박○식은 진통제주사를 세번이나 맞고도 계속 심한 복통과 구토증을 호소했고 배와 가슴 등을 세번이나 엑스선 사진을 찍고 두번에 걸쳐 췌장염 검사를 했으나 병명을 알아낼 수 없었으며 병실에 가서도 심한 복통과 구토증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있지도 못하고 침대 옆 바닥에 배를 움켜쥐고 쭈그리고 앉아 통증을 호소할 정도였으니 경험이 얕은 송○수가 치료하기에는 처음부터 너무나 벅찬 중환자이며 위급한 환자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송○수로서는 그날 13시까지 세 번이나 엑스선사진을 찍고서도 병명을 알아내지 못하였다면 적어도 그 단계에서는 과장에게 알려서 지시를 받거나, 전문의사가 있는 다른 병원에 보냈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국립과학연구소 의사 이○성 작성의 부검결과에 따른 질의회보에 “진찰결과 진단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다. 횡격막탈장이라는 질병과 의사의 능력이라는 두가지 변수로 인하여 진단가능한 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 처음 본 의사가 지연성·외상성 횡격막탈장에 충분한 경험 및 지식이 있을 것으로 인정되는 의사라면 똑같은 환자라도 경험이 많지 않은 의사 보다 진단에 걸리는 시간은 훨씬 짧을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듯이(수사기록 111쪽) 좀 더 지식과 경험이 많은 의사에 의하여 진찰이 되었더라면 환자의 병명은 그날 16시까지 갈 것 없이 그 이전에 밝혀졌을 것이고 일찍 수술이 되어 환자의 생명을 건질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수사검사로서는 이처럼 중환자를 왜 빨리 해당 과장에 알리거나 다른 병원에 보내지 않고 병명을 알아내기 위하여 11시 30분부터 16시까지 4시간 30분 동안이나 시간을 허비하였는가의 점에 대하여 조사하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점에 대하여 조사가 되어 있지 않다. 둘째, 피의자 송○수는, 그가 작성한 환자 박○식에 대한 병상기록지의 내용에 의하면, 그날 16시경 4차 엑스선 촬영으로 횡격막탈장이라는 병명을 알아내기 전에는 장천공에 의한 범발성복막염을 의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수사기록 156쪽, 158쪽 뒷면 참조) 시체를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사 이○성 작성의 질의회보서에도 지적되어 있듯이(수사길고 117쪽) 장천공에 의한 복막염(단순복막염도 같음)도 개복수술을 필요로 하는 질환이며 당일 입원실에 근무했던 간호사 백○옥에 대한 진술조서의 기재에 의하더라도 환자 박○식은 응급실에서 병실로 올라올 때부터 수술해야 된다는 처방이 내려져 있었다는 것이므로(수사기록 45쪽)의사 송○수로서는 횡격막탈장이라는 병명을 알아내기 이전에 이미 환자가 개복수술을 받을 수 있게끔 필요한 조치를 하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횡격막탈장을 알아낸 16시 이전에는 수술을 위하여 어떠한 조치를 하였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의사 송○수로서는 환자의 증세를 복막염으로 의심하였으면 그때 벌써 수술준비를 하고 수술할 의사를 수소문하거나 수술할 수 있는 다른 병원을 물색했어야 하며 이 정도의 주의만 기울였다면 환자는 고통을 덜 겪고 충분히 살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검사로서는 의사 송○수가 왜 이러한 주의를 아니하였는지에 대하여 수사하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점에 대하여 조사가 되어 있지 않다. 셋째, 그날 16시 횡격막탈장이라는 병명을 알아낸 후에 의사 송○수가 취한 조치에는 더욱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앞에서 본 것처럼 그날 16시 횡격막탈장으로 진단된 후에라도 신속히 수술하였더라면 환자 박○식은 사망하지 아니하였을 것인데 의사 송○수는 빨리 수술은 해야 하지만 24시간안에 사망할 만큼 그렇게 화급을 요하는 병은 아니라고 믿은 나머지 대구에 내려가서 19시경에야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외과과장이 돌아오거나 성남시 개업의사 정○명으로부터 전화 오기만을 기다리느라고 2시간 30분이나 허송한 나머지 환자로 하여금 수술받을 기회를 놓쳐 사망케 한 것인데 과연 의사 송○수의 위와 같은 행동이 통상의 능력을 가진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주의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되는 것이다. 횡격막탈장은 결손된 횡격막을 통하여 복강내의 장이 흉강안에 들어가서 폐나 심장을 압박하는 것이므로 호흡곤란이 생기거나 호흡이 빨라지고 구토증 등이 생기며 장에 피가 통하지 못하여 장괴사(腸壞死)를 일으키는 것이어서(환자 박○식의 경우처럼 왼쪽에 횡격막탈장이 생겼을 때는 심장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게 되고 위와 같은 증상이 더욱 심해진다) 위와 같은 증상이 거의 없고 우연히 엑스선 검사에 의하여 발견된 경우라도 일단 진단이 내려지면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수술을 해야 하며, 그것이 중증일 경우에는 진단이 내려지는 대로 곧 수술을 해야 하는 병이다(서울대학교 의과대학학장 의학박사 권이혁 외 6인이 편집한 동아출판사 발행 현대가정의학백과 990족 참조). 그리고 환자 박○식은 그날 11시경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하였고 병원에 입원한 11시 30분부터 병명을 발견하기까지 무려 4시간 30분이 경과되었으며 그는 다량의 진통제주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계속해서 복통과 구토증을 호소하면서 크게 고통을 겪어 왔으며 병세도 점점 악화되어 16시 15분경부터는 호흡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17시경에는 호흡곤란이 생겨 17시 30분경에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산소호흡을 시켜야 할 정도였으니 그는 매우 중증의 환자였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송○수는 19시경에야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예정이라는(예정대로 서울에 도착된다고 볼 수도 없다) 외과과장이 올 때까지 기다려도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수술할 수 있는 다른 병원을 물색하지 아니하고 있다가 환자의 보호자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고서야 마지못해서 한양대학부속병원에 보내기로 한 것이었으니 의 사 송○수의 위와 같은 판단이나 조치는 잘못된 것이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검사로서는 환자 박○식과 같은 중환자에 대하여 보통의 능력을 가진 의사가 취해야 할 주의의무가 무엇인지를 신중히 생각하고 의사 송○수가 위와 같은 환자의 용태(容態)에도 불구하고 조속히 다른 병원에 보낼 수 없는 특수한 사정이라도 있었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조사하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점에 대하여 조사가 되어 있지 않다. 다) 이상과 같이 의사 송○수가 환자의 증세를 횡격막탈장이라고 진단을 내리기까지의 과정 및 진단이 내려진 후의 처리방법에 있어 여러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고 그러한 점을 더 조사하지 않고서는 의사 송○수의 형사책임 유무를 단정하기 어려울 것임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그러한 점에 대하여 조사하지 아니한 채 의사 송○수에게 형사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여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하였는데, 이는 검사가 당연히 의심을 갖고 조사해야 할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조사를 현저히 소홀히 한 채 사건을 종결한 것이어서 결국 검찰권을 행사함에 있어 고소인을 차별대우하여 헌법 제11조 제1항에서 보장된 그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또한 헌법 제27조 제5항에서 보장된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 것에 해당된다(헌법재판소 1989.7.14.선고, 89헌마10결정 참조). 따라서 검사로 하여금 더 수사하도록 하기 위하여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2항, 제3항에 의하여 피의자 송○수에 대한 검사의 불기소결정(혐의없음)을 취소하기로 하고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한병채, 재판관 최광률, 재판관 김문희의 4와 같은 반대의견을 제외하고 나머지 재판관 6인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다. 4. 재판관 한병채, 재판관 최광률, 재판관 김문회의 반대의견 가.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1988.10.9.은 공휴일(한글날)이었으며, 그때에 의사면허를 얻은지 겨우 1년 6개월 된 27세의 나이어린 수련의사에 지나지 않는 송○수가 혼자서 당직책임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던 사실과 일건 기록에서 뿐만 아니라 다수의견의 판시에서도 설시하고 있듯이 의사 송○수로서는 환자의 진료에 나름대로 노력을 다한 사실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사고는 피고소인인 의사 송○수의 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이라고 보기 보다는 오히려 종합병원인 강동가톨릭병원의 휴일의 당직체계·응급환자에 대한 진료체계 등 의료체제와 운영상의 구조적 잘못이 주된 원인이 되어 발생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견이 의사 송○수의 과실로 인정하는 수사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주문과 같이 결정을 하는 것은 이 사건 사고발생의 원인에 관하여 그 핵심을 잘못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 다수의견이 피청구인의 불기소처분을 취소한 이유의 요지는, 피청구인이 피의자 송○수에 대하여 1988.7.28.에 한 무혐의불기소처분은 의사 송○수가 ⑴ 환자인 박○식이 응급의 중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빨리 해당과장에게 알리거나 다른 병원에 보내지 않고 병명을 알아내기 위하여 11:30부터 16:00까지 4시간 30분 동안이나 시간을 허비하였는가 ⑵ 환자인 박○식을 복막염으로 의심하였으면 그 즉시 수술준비를 하고 수술할 의사를 수소문하거나 수술할 수 있는 다른 병원을 물색했어야 하였는데도 왜 이를 게을리 하였는가 ⑶ 환자의 위급한 용태에도 불구하고 조속히 다른 병원에 보낼 수 없는 특수한 사정이라도 있었는가 등의 점에 대하여 제대로 조사가 되어 있지 않고, 그러한 점을 조사하지 않고서는 의사 송○수의 형사책임의 유무를 가리기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조사하지 아니한 채 의사 송○수에게 형사상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결정한 것이므로 이는 결국 수사를 소홀히 한 채 사건을 종결한 것이어서 이를 취소한다 함에 있다. 그러나 검사의 수사소홀을 이유로 하여 헌법소원을 인용하기 위하여는 검사가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쳐 자의적으로 수사를 한 경우와 같이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수사를 하였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이어야 하고 그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는 단순한 수사소홀에 대하여는 헌법소원제도를 통하여 헌법재판소가 관여할 일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헌법소원은 헌법의 정신에 비추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를 취소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헌법을 보장하려는 제도이고,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이 인정되는 취지는 헌법재판소가 검사의 불기소처분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권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말미암아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이므로 헌법재판소로서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이 자의적인 것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는지의 여부를 심사기준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다수의견과 견해를 같이하나 이를 취소하는 결정에 이르기 위하여서는 검사의 수사가 지나치게 편파적이거나 자의적인 것이어서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경우, 헌법의 해석·법률의 적용 또는 증거판단에 있어 불기소처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잘못이 있는 경우이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에는 기록에 의하더라도 피청구인이 고소사실에 대하여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수사를 하였거나 헌법해석·법률적용 또는 증거판단에 있어 불기소처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잘못이 있음을 찾아 볼 수 없다. 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수의견이 헌법소원의 기본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어 다수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을 밝히는 것이다. 1990. 12. 26.

재판관 조규광(재판장) 이성렬 변정수 김진우 한병채 이시윤 최광률 김양균 김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