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국외로 도피한 경우 국내 수사기관이 외국 수사기관과 형사사법공조를 통해 범인의 소재를 파악하고 검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내의 수사권 및 사법권 발동에 현실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심판대상조항은 범인이 국외에 있는 경우 일률적으로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만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범인이 범죄 후 국내에 있는 경우와 달리, 국외에 있는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정한 것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심판대상조항은 평등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형사소송법(1995. 12. 29. 법률 제5054호로 개정된 것) 제253조 제3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 유
1. 사건개요
가. 청구인은 “대금을 제대로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피해자들을 기망하여 2000. 3. 27. 및 2000. 4. 18.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는 공소사실로 2014. 10. 22. 기소되었다. 한편 청구인은 2000. 4. 11. 미국으로 출국하였다가 2014. 5. 16. 귀국한 바 있다.
나. 청구인은 1심에서 범죄일시로부터 7년이 경과하여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2015. 6. 3. 청구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미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에 따라 미국에 있었던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었다고 보아 위 주장을 배척한 다음, 청구인에게 징역 8월의 형을 선고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4고단7588). 이에 청구인이 항소하였으나 2015. 11. 26. 기각되었으며(서울중앙지방법원 2015노2410), 이에 다시 상고하였으나 2016. 1. 28. 기각되어 1심 판결이 확정되었다(대법원 2015도19200).
다. 청구인은 상고심 계속 중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대법원이 2016. 1. 28. 위 신청을 기각하자(2016초기32), 2016. 4. 15.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형사소송법(1995. 12. 29. 법률 제5054호로 개정된 것) 제253조 제3항(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심판대상조항 및 관련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형사소송법(1995. 12. 29. 법률 제5054호로 개정된 것)
제253조(시효의 정지와 효력) ③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관련조항]
형사소송법(1954. 9. 23. 법률 제341호로 제정된 것)
제252조(시효의 기산점) ① 시효는 범죄행위의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한다.
3. 청구인의 주장
가. 심판대상조항이 공소시효의 정지 여부에 있어 범인이 국내에 있는 경우와 국외에 있는 경우를 달리 취급하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반된다.
나. 심판대상조항은 범죄에 정해진 법정형의 장단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모든 범죄에 대하여 동일하게 국외에 있는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정하고 있고, 재외공관에 등록을 한 재외국민에 대해서까지 등록하지 아니한 재외국민과 마찬가지로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정하고 있어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청구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
4. 판 단
가. 국외 도피로 인한 공소시효 정지 제도
(1) 공소시효와 공소시효 정지 제도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종료된 후 일정한 기간이 경과함에 따라 공소권이 소멸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공소시효 제도는 시간의 경과로 인하여 범죄의 사회적 관심이 미약해져 가벌성이 감소하고, 범인이 장기간 도피생활을 하면서 정신적 고통을 받은 점과 증거가 산일되어 공정한 재판을 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하여, 범인이 범죄 후 일정한 기간 기소되지 아니함으로써 형성된 사실상의 상태를 존중하여 법적 안정을 도모하고 형벌권의 적정을 기하려는 데 그 존재이유가 있다. 대다수 국가에서 형사시효의 하나로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데, 공소시효 정지는 해당 사유가 존재하는 동안에만 이루어지고 그 사유가 없어지면 나머지 기간 동안 다시 진행된다는 점에서, 중단사유가 소멸하면 시효가 처음부터 다시 진행되는 시효의 중단과 구별된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시효의 중단을 인정하지 않고, 시효의 정지만을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상 공소시효 정지의 사유로는 심판대상조항 외에 공소의 제기(형사소송법 제253조 제1항), 재정신청(동법 제262조의4 제1항), 소년보호사건의 심리개시결정(소년법 제54조) 등이 있다.
(2) 심판대상조항의 입법연혁과 취지
심판대상조항은 1980년대 후반에 들어 해외여행 자유화를 틈타 우리나라의 형사재판관할권이 외국에서는 행사될 수 없음을 악용하여 공소시효의 완성을 기대하고 범인이 해외에 도피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국가 형벌권의 적정한 실현을 목적으로 1995. 12. 29. 법률 제5054호로 형사소송법 개정 시 신설되었다.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로 도피한 경우 국외에 있는 기간 동안 공소시효의 진행을 저지하여 범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형벌권을 적정하게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심판대상조항의 목적이다.
나. 쟁점의 정리
심판대상조항은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국내에 있는 경우와는 달리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정하여 국내에 있는 범인과 국외에 있는 범인을 차별하여 취급하고 있는바, 이러한 차별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청구인은 심판대상조항이 범죄에 정해진 법정형의 장단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모든 범죄에 대하여 동일하게 국외에 있는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정하고 있고, 재외공관에 등록을 한 재외국민에 대해서까지 등록하지 아니한 재외국민과 마찬가지로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정하고 있어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청구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하나, 이는 결국 심판대상조항이 다르게 취급해야 할 것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어 위헌이라는 취지여서 이에 대해서는 평등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면 족하므로,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한다.
다. 평등원칙 위반 여부
(1) 심사기준
공소시효 정지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기본권 제한은 헌법 제32조 제4항이나 제36조 제1항 등과 같이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는 경우나 차별적 취급으로 인하여 관련 기본권에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는 경우라고 볼 수 없으므로, 자의금지원칙에 따라 판단하면 족하다.
(2) 차별취급의 존재
앞서 본 바와 같이 심판대상조항은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국내에 있는 경우와 달리, 형사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함으로써, 이들을 차별취급하고 있다.
(3) 자의적인 차별인지 여부
(가) 국외도피자 발생 시 국내 수사기관이 외국 수사기관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하여 범죄자의 현재지를 파악하고 수사할 수 있는 방안이 있기는 하나, 제도의 운용상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외국 수사기관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는 형사사법공조조약, 범죄인 인도조약 등인데,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는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고, 범인이 어느 나라로 도주했는지 그 소재 자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는 피요청국을 특정하기 곤란한 문제가 발생한다. 조약 등을 근거로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형사사법공조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절차가 복잡하여 수사 및 검거에 장기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법공조 요청에 상대방 국가에서 협조해 줄지도 미지수이다. 형사사법공조는 범죄인 인도 또는 수사 대상자의 범죄가 양 당사국에서 모두 범죄에 해당하여야 청구할 수 있는데, 국가마다 형사사법제도가 상이하며, 문화적·종교적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범죄인 행위가 상대국가에서는 범죄가 아닐 수도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피요청국이 사법공조 요청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제한된 영역에서, 제한된 수사방법을 통한 협조만이 가능하며, 외국 수사기관이 자국 내 범죄를 수사하는 만큼의 수사 인력,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위와 같이 외국 수사기관과의 형사사법공조를 통해 범인의 소재를 파악하고 검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 하더라도, 범인이 국외에 있는 동안에는 국내의 수사권 및 사법권 발동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외국으로 도피하는 사례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그 검거율은 국내의 검거율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나) 심판대상조항은 범인이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일률적으로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하지 않고,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만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하고 있다.따라서 해외에서의 생활 근거지, 귀국할 수 없는 사정이 초래된 경위, 수사기관이나 재외공관에 귀국 의사의 통보 여부 등의 사정이 법원의 재판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으며, 법원에서 이를 토대로 해당 범죄의 공소시효 기간과 국외 체류기간의 비교 등을 통하여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구체적 타당성을 기할 수 있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이 범인이 국내에 있는 경우와 달리 국외에 있는 경우에는 무조건적으로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정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다) 심판대상조항을 적용함에 있어서 범죄를 저지르고 국외에 있는 범인 중 재외공관을 통해 재외국민등록을 한 자와 아니한 자를 구별할 필요가 있는지 살펴본다.심판대상조항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음으로써 국내의 수사권이 효율적으로 미치지 못하게 한 경우를 규율하고 있는데, 재외국민등록을 하였다 하여 반드시 국내의 수사권이 효율적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구체적인 사정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개별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에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의 판단을 함에 있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을 적용함에 있어서 국외에 있는 범인 중 재외국민등록을 한 자와 아니한 자를 특별히 구별할 필요는 없다.
또한 심판대상조항은 범죄에 정해진 법정형의 정도나 공소시효의 장단에 관계없이 범인이 국외에 있는 동안에 일률적으로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정하고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심판대상조항에서 범인이 국외에 있는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한 것은 그 기간 동안 국내의 수사권이나 사법권이 제대로 발동될 수 없기 때문인데, 범죄의 경중에 따라 국내의 수사권 및 사법권 발동의 용이성이 달라진다고 볼 수 없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을 적용함에 있어서 범죄의 불법성 정도 역시 특별히 고려할 필요가 없다. 범죄의 불법성 정도에 따른 공소시효의 장단은 이미 형사소송법에서 범죄의 법정형에 따라 공소시효 기간에 차등을 둠으로써 반영되어 있다.
(라) 이상을 종합하여 보면, 심판대상조항에서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국내에 있는 경우와 달리,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정한 데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4) 소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평등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5. 결 론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