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결정
사건2015헌마869 양곡관리법제20조의4등위헌확인
이 유
1. 사건개요
가. 청구인은 1989. 3. 30. 서울 서초구 ○○동에서 양곡 도매시장 중개업을 허가받고, 1997. 1. 1.부터 ‘○○상회’라는 상호로 양곡도소매업을 영위하는 사람으로서, 생산연도가 다른 쌀을 혼합하여 팔거나, 중국, 베트남 등의 국가에서 수입한 쌀에 국산 찹쌀 소량을 혼합하여 판매하여 왔다.
나. 그런데 2015. 1. 6. 법률 제12964호로 개정되어 2015. 7. 7. 시행된 양곡관리법 제20조의4 제2항은 양곡매매업자가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양곡에 대하여 국산 미곡등과 같은 종류의 수입 미곡등을 혼합하여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행위, 생산연도가 다른 미곡등을 혼합하여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였다.
다. 이에 청구인은 2015. 8. 25. 위 양곡관리법 규정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그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대상
청구인이 심판대상으로 삼고 있는 양곡관리법 제20조의4 제2항 중 청구인과 관련된 부분은 양곡매매업자에 관한 부분이므로 심판대상을 이에 한정한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대상은 양곡관리법(2015. 1. 6. 법률 제12964호로 개정된 것) 제20조의4 제2항 중 양곡매매업자에 관한 부분(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이다. 심판대상조항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양곡관리법(2015. 1. 6. 법률 제12964호로 개정된 것)
제20조의4(양곡의 혼합 금지) ② 양곡가공업자나 양곡매매업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양곡(이하 “미곡등”이라 한다)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국산 미곡등과 같은 종류의 수입 미곡등을 혼합하여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행위
2. 생산연도가 다른 미곡등을 혼합하여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행위
3. 청구인의 주장요지
수입 쌀은 국산 쌀과 달리, 동남아 외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나 공사현장, 대형선박 등에 국한되어 사용되므로, 국산 쌀 시장과는 별개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국산 쌀의 가격, 소비, 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따라서 기존의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농수산물품질관리법, 양곡관리법상의 원산지와 혼합 비율 표시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미곡등의 부정 유통을 근절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곡시장의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및 생산농업인과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국산 쌀과 수입 쌀을 혼합하여 판매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는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어 양곡도매업에 종사하는 사업자들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
4. 판 단
가. 혼합 쌀의 유통과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배경
밥쌀용 수입 쌀은 2006년부터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하였는데, 쌀에 대한 관세화를 유예하는 대신 최소시장접근물량으로서의 쌀에 대한 의무적 수입량을 매년 일정 비율 확대하기로 한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농업협상과 그에 따른 2004년의 쌀 협상으로 인하여 밥쌀용 수입 쌀의 유통규모도 2014년에 이르기까지 매년 증가하여 왔다.
그런데 2006년부터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한 수입 쌀은 국산 쌀에 비하여 가격이 저렴한 반면 미질이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수입 쌀 유통업체들은 수입 쌀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하여 국산 쌀이나 국산 찹쌀을 수입 쌀과 다양한 비율로 혼합한 후 이를 유통·판매하여 왔다. 또한 국내외산 쌀의 가격 차이는 혼합 쌀을 국산으로 표시하여 판매하거나, 혼합 비율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혼합 쌀에 ‘농부의 명작’, ‘자연맛쌀’ 등 소비자가 국산으로 오인할 만한 상품명을 사용하는 등의 부정유통의 원인이 되었는데, 쌀 수입 규모가 매년 증가함에 따라 부정유통 건수 및 그로 인한 부정이익의 규모도 급증하였다.
그럼에도 양곡유통 관련 법령에서는 쌀의 원산지, 생산연도, 품질 등 표시 등에 관하여 거짓이나 과대로 표시나 광고를 하거나 오인시킬 우려가 있는 표시 등을 한 경우 최고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는 등의 처벌규정만 두고 있을 뿐(2015. 1. 6. 법률 제12964호로 개정되기 전의 구 양곡관리법 제34조 제4호, 2016. 12. 2. 법률 제14291호로 개정되기 전의 구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제15조), 쌀 등 미곡의 혼합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규정을 두지 아니한 관계로, 원산지와 혼합 비율을 규정대로 표시하기만 하면 수입 쌀과 국산 쌀, 각 생산연도가 다른 쌀 간의 혼합 판매도 얼마든지 가능하였고, 국내외산 농수산물을 혼합한 경우 혼합 비율이 높은 순서로 3개 국가까지의 원산지와 혼합 비율을 표시하여야 하나(‘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조 제1항 관련 [별표 1]), 혼합 후 국산으로 표시하거나 혼합 비율을 허위로 표시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여 왔다.
이와 같이 여러 종류의 쌀을 혼합하여 판매할 경우, 혼합한 내용물이나 내용물의 생산연도, 혼합 비율 등은 정해진 바가 없이 다양한데, 시약처리를 통한 신선도 감정이나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하여 원산지나 생산연도가 다른 미곡 간의 혼합 여부를 판정하는 것은 비교적 용이하나, 그 혼합 비율을 판정하는 것은 혼합 쌀 시료의 균등성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쉽지 않았고, 그에 따라 혼합 비율을 허위로 기재하는 경우에 대한 단속 및 처벌이 사실상 어려웠다.
이에 국회는 양곡의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 2015. 1. 6. 법률 제12964호로 심판대상조항을 신설하여,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양곡에 대하여 국산 미곡등과 같은 종류의 수입 미곡등을 혼합하여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행위, 생산연도가 다른 미곡등을 혼합하여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였고, 2015. 6. 30. 농림축산식품부령 제147호로 양곡관리법 시행규칙 제7조의5를 신설하여, 혼합 금지 대상인 양곡이란 벼, 현미, 쌀로서 육안으로 원형을 알아볼 수 있는 것(부서진 것을 포함한다)을 말한다고 규정하였다.
나. 심판대상조항이 위헌인지 여부
(1) 제한되는 기본권과 심사기준
헌법 제15조는 개인이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원하는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뿐만 아니라, 선택한 직업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직업수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헌재 2002. 7. 18. 99헌마574).
청구인은 양곡도소매업자로서 심판대상조항에 의하여 수입 쌀과 국산 쌀, 생산연도가 다른 쌀 등을 혼합하여 판매하여서는 안 될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은 청구인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격발현에 대한 침해의 효과가 작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하여는 공공복리 등 공익상의 이유로 비교적 넓은 법률상의 규제가 가능하다(헌재 2003. 6. 26. 2002헌바3 참조). 그러나 이처럼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할 때에도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정하고 있는 기본권제한의 한계인 과잉금지원칙은 지켜져야 한다(헌재 2009. 4. 30. 2007헌마103 참조).
(2) 직업수행의 자유 침해 여부
(가) 입법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
앞서 본 바와 같이 심판대상조항이 신설되기 이전에는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등 관련법령에서 쌀 등 미곡의 혼합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규정을 두지 아니하여, 원산지와 혼합 비율을 규정대로 표시하기만 하면 수입 쌀과 국산 쌀, 각 생산연도가 다른 쌀 간의 혼합 쌀 판매도 얼마든지 가능하였고, 이러한 경우 혼합 여부나 비율에 대한 육안식별이 어려우며, 가격 차이가 크기 때문에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혼합 쌀의 부정유통이 근절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곡의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수입 미곡과 국산 미곡, 생산연도가 서로 다른 미곡등을 혼합하여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심판대상조항을 신설하였는바, 그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할 수 있다.
(나) 침해의 최소성
묵은쌀과 햅쌀, 수입 쌀과 국산 쌀의 가격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혼합 쌀의 부정유통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미곡 유통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원산지나 생산연도와 같은 일정한 내용을 표시하도록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혼합한 상태로의 유통 및 판매를 완전히 금지할 필요가 있다. 혼합하여 유통하는 것을 허용하게 되면 앞서 본 바와 같이 혼합 사실 그 자체는 판정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비율로 혼합하였는지는 사실상 판정이 어려운바,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자 값싼 수입 쌀 또는 묵은쌀을 비싼 국산 쌀이나 햅쌀과 혼합하여 혼합 비율을 속이고 유통시키게 되면 결국 이는 소비자의 불신을 야기하게 되고 미곡 등의 유통질서를 어지럽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청구인은 쌀에 대한 이력추적제의 도입으로도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인 쌀 유통질서 확립과 소비자의 신뢰 확보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력추적관리란 농수산물의 안전성 등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농수산물을 추적하여 원인을 규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농수산물의 생산단계부터 판매단계까지 각 단계별로 정보를 기록, 관리하는 것으로서, 세부 산지정보를 전달하여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는 있을 것이나, 혼합 비율 등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이나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그 자체만으로원산지나혼합비율에 대한 거짓·과대의 표시나 광고 등을 방지하고 부정유통을 예방하기는 어렵다.
또한 수입 미곡과 국산 미곡, 또 생산연도가 다른 미곡등을 혼합하여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한다 하더라도, 양곡매매업자로서는 국산으로 생산연도가 오래되지 않은 미곡뿐 아니라, 수입 미곡이나 생산연도가 오래된 미곡 모두를 여전히 팔 수 있다. 그리고 소비자가 원하는 경우 최상의 밥맛을 낼 수 있는 비율을 안내하고 이에 맞추어 수입 미곡과 국산 미곡, 혹은 생산연도가 오래된 미곡과 신선한 미곡을 각각 판매하여 이를 구매한 고객이 구매 후 혼합하는 방법으로도 영업할 수 있으므로,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상을 종합하면, 심판대상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도 위반되지 아니한다.
(다) 법익의 균형성
심판대상조항은 양곡매매업자의 수입 미곡등의 유통이나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혼합한 상태로 유통 내지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을 뿐이어서 청구인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크게 제한하지 않는 반면, 혼합 유통 판매를 금지함으로써 미곡시장의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고자 하는 공익은 매우 크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법익의 균형성도 갖추고 있다.
(라) 소결
결국 심판대상조항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청구인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5.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재판관 김이수(재판장)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이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