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문
피청구인이 2013. 5. 31. 서울남부지방검찰청 2013년 형제20847호 사건에서 청구인에 대하여 한 기소유예처분은 청구인의 평등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
청구인은 2013. 5. 31.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로부터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는바(서울남부지방검찰청 2013년 형제20847호, 이하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이라 한다), 그 피의사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청구인은 2013. 3. 5. 19:00경 서울 구로구 ○○아파트 201동 ○○호 내에서 청구인의 시모 피해자 맹○순(여, 78세) 소유의 수첩에 청구인의 남동생 전화번호가 적힌 사실을 알고, 피해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청구인의 남동생에게 시댁에서 분쟁 중인 피해자의 부양문제를 친정에 알리는 것을 염려해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 일부분을 찢어내어 그 효용을 해하는 견적미상의 재물을 손괴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이 자신의 평등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2013. 7. 29. 그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청구인의 주장요지와 피청구인의 답변요지
가. 청구인의 주장요지
청구인의 손괴행위는 피해자가 자신의 부양 문제에 대하여 청구인을 포함한 가족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자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청구인의 남동생에게 연락하려는 태도를 보여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피해자의 수첩에서 청구인 남동생 전화번호 부분만을 찢어내는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였므로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이 인정되는 등, 그 동기와 목적, 수단과 방법, 그 경위 등 여러 가지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는 위법성이 결여된 행위이다.
따라서 피청구인으로서는 청구인의 행위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이므로 혐의 없음 처분을 하였어야 함에도 자의적으로 기소유예처분을 하였는바, 이는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요지
피해자 수첩의 해당 부분을 도려내면 청구인이 없애고자 한 정보뿐만 아니라 그 뒷면에 기재된 정보 또한 함께 소실된다. 그리고 청구인이 직접 동생에게 연락하여 피해자로부터 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을 고지하거나 피해자의 전화번호에 대하여 수신 거부조치를 취하는 등과 같이 피해자에 대한 법익 침해로 나아가지 않는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하였으므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라고 인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어야 하는데, 며느리가 더 이상 79세의 노모에 대한 부양을 거부하여 서로 간의 감정이 악화된 상태에서 시어머니의 수첩을 가져가 찢은 행위가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3. 판 단
이 사건의 쟁점은 청구인이 피해자의 수첩에서 자신의 동생 전화번호가 기재된 부분을 찢은 행위(이하 ‘이 사건 손괴 행위’라 한다)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형법 제20조 소정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라 함은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를 말한다. 어떠한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인지는 구체적인 사정 아래서 합목적적, 합리적으로 고찰하여 개별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므로, 이와 같은 정당행위가 인정되려면,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이익과 침해이익의 법익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이외의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대법원 2002. 12. 26. 선고 2002도5077 판결 등 참조).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① 청구인은 1987. 4. 결혼 이후 시모인 피해자와 함께 동거한 이래 2008년 청구인의 부(夫)가 사망한 후에도 계속하여 동거하면서 두 아들 및 피해자를 부양하며 함께 27년째 생활을 하였다. ② 서울 소재 대학원에 다니는 청구인의 첫째 아들은 2008. 6. 부터 2010. 1. 까지 3회에 걸쳐 기흉 등으로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현재도 기낭병변이 발생하여 병원 진료를 받고 있으며 2010. 2. 27. 경부터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따로 거주하고 있었고, 둘째 아들은 2013년 천안에 있는 대학에 입학을 하여 따로 방을 얻어 세 집 살림을 하여야 할 형편에 이르러 청구인의 집에서 피해자를 부양하기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③ 청구인이 그 형편을 호소하며 청구인의 시동생에게 피해자를 모실 것을 제안하여 2013. 3. 1. 경 청구인, 청구인의 시동생, 시누이가 피해자 부양문제를 의논하였으나 피해자가 아들인 청구인의 남편에게 청구인의 집을 매입할 때 증여하였던 금원의 반환이 없으면 시동생이 모셔갈 수 없다고 하여 언쟁이 벌어지고 결국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였다. ④ 이후 피해자는 위 문제와 관련이 없는 청구인의 남동생과 부양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그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려고 하였으나 청구인과 청구인의 둘째 아들은 그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자, 피해자는 이와 같은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청구인의 첫째 아들에게 그 전화번호를 물어 알아내 실제로 청구인의 남동생에게 전화를 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⑤ 한편, 청구인의 남동생은 과대망상을 동반한 감정적 불안정 등으로 인하여 과거 대학 입학 무렵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이래 1994년, 2008년 재발하여 다시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며, 2008. 3. 1. 부터 현재까지 계속하여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 치료 중이고, 심리적 부담이 있으면 증상의 악화 또는 재발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까지 있다. ⑥ 청구인은 2013. 3. 5. 남동생에게 부양문제를 둘러싼 이와 같은 사정이 알려져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피해자의 수첩에서 청구인의 남동생 전화번호가 기재된 부분만 구멍을 내어 찢어 버린 후 그 수첩을 원래 있던 곳으로 가져다 놓았다.
위 인정사실을 토대로 살펴보면 ① 청구인은 결혼 이후 피해자와 함께 27년째 동거하면서 피해자를 부양해 왔으나 이 사건 손괴 행위 일시 무렵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사실상 피해자를 부양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고, ② 피해자 부양문제는 청구인, 청구인의 시동생, 시누이 등이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굳이 제3자적 처지에 있으며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없는 청구인의 남동생에게까지 알려 논의에 참여시킬 필요가 없었다고 보이며, ③ 청구인의 남동생은 기왕의 양극성 장애가 있어 약물치료 중이었고 심리적 부담이 주어진다면 정신과적 증상의 악화 가능성이 있었고, ④ 손괴의 객체는 청구인의 남동생 전화번호 부분으로 경제적 가치가 매우 경미하고, 피해자도 청구인의 남동생에게 전화를 해도 결국 소용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전화를 하지는 않고 있었다라고 진술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위 전화번호의 사용가치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가정은 혈연과 결혼, 애정으로 맺어진 인간에게 가장 친밀한 집단인 가족이 동거동재(同居同在)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본거지로 이해득실보다는 이해와 사랑 및 헌신이라는 가치로 유지되고 형성되며, 이 영역에서는 법률, 특히 형법의 역할은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손괴 행위는 피해자의 부양에 얽힌 시댁 가족 간 분쟁을 피해자가 청구인의 남동생에게 알림으로써 갈등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고 나아가 그의 정신과적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하게 된 것으로, 피해자 수첩의 손괴 정도, 청구인 남동생의 정신과 치료 상황, 손괴된 전화번호 부분의 사용가치, 가정 내에서의 지극히 경미한 법익 침해 문제는 법의 한계 영역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되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여지가 많다.
따라서 피청구인으로서는 이 사건 손괴 행위를 한 동기와 목적, 그와 같은 조치에 이르게 된 경위, 청구인 남동생의 정신과적 증상의 정도 및 현재의 치료 상황, 청구인 남동생의 전화번호를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었는지 여부 등을 더 자세히 살펴보아 청구인의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지에 대하여 판단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이 이에 이르지 아니하고 위와 같이 피해자의 수첩에서 청구인 남동생 전화번호 부분을 찢어내 버렸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손괴 혐의를 인정하고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은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법리오해 및 수사미진의 잘못이 있으므로 자의적인 검찰권의 행사라 아니할 수 없고, 그로 말미암아 청구인의 기본권인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고 할 것이다.
4. 결 론
그렇다면 청구인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김창종, 재판관 조용호의 아래 5. 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재판관 전원의 의견일치에 의한 것이다.
5. 재판관 김창종, 재판관 조용호의 반대의견
우리는, 다수의견과 달리 청구인의 이 사건 손괴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생각한다.
다수의견도 밝힌 것처럼, 어떠한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형법 제20조)되기 위하여는,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이익과 침해이익과의 법익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대법원 2002. 12. 26. 선고 2002도5077 판결 등 참조).
기록에 의하면, 청구인과 피해자는 27년째 함께 동거하여 온 시모와 며느리 사이이고, 피해자는 2008년 아들이 사망한 이후 우울증 증세를 보여 왔으며(수사기록 제19쪽, 제50쪽), 2013. 3. 1. 청구인으로부터 동거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처음으로 듣고 수첩에 청구인의 남동생 전화번호를 기재하여 놓았으나 청구인이 2013. 3. 5. 그 부분을 찢어버릴 때까지 청구인 남동생에게 전화를 하지는 않았고, 피해자는 ‘답답한 마음에 의논을 해보려고 하였던 것이나 전화를 해봐야 며느리 편을 들 것이어서 전화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고 진술한다(수사기록 제73쪽).
다수의견은, 피해자의 부양 문제를 청구인의 남동생에게 알리면 그의 정신과적 증상이 악화될 수도 있어 청구인이 이를 막기 위하여 이 사건 손괴 행위를 하게 된 것으로, 피해자 수첩의 손괴 정도, 청구인 남동생의 정신과 치료 상황, 손괴된 전화번호 부분의 사용가치, 가정 내에서의 지극히 경미한 법익 침해 문제는 법의 한계 영역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손괴행위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되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 손괴행위로 인하여 직계존속인 피해자가 받은 충격과 가족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손괴 행위를 가정 내에서의 지극히 경미한 법익 침해 문제라고 보는 다수의견에는 따르기 어렵다. 피해자가 청구인의 남동생에게 실제로 전화를 걸 것인지 여부는 사실 불확실하였고, 청구인은 자신의 동생이 피해자의 전화를 받고 혹시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방지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수첩 일부분을 손괴하였다고 하지만 피해자 또한 우울증 증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는 더 이상 피해자를 부양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청구인의 의견을 말한 지 5일째 되는 날로 피해자의 갑작스러운 거처 변경 및 그 부양문제에 대하여 가족들 간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피해자가 청구인과 함께 27년간 동거하면서 손자들을 돌보아 오고 상호간 별 문제가 없었던 가족 구성원임에 비추어 당장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청구인은 진심으로 피해자를 설득하는 등의 방법을 취하였어야 함에도 피해자의 수첩에 동생의 전화번호가 기재되었다는 사실을 안 직후 피해자와 청구인의 남동생이 통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다른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무단으로 피해자의 수첩을 가져가 피해자의 수첩 일부분을 찢어버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손괴행위의 긴급성 및 보충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청구인과 피해자, 그리고 청구인의 아들들은 혈연과 혼인으로 이루어진 가족으로 청구인이 결혼한 이래 청구인의 둘째 아들이 2013. 3.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상호 부양하며 가족 공동체로 별다른 갈등 없이 생활해 왔고, 특히 피해자는 현재 가족이 거주하는 집을 구입할 때 자신의 전 재산에 가까운 1억 원 이상을 증여하였으며, 청구인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손자들에 대하여 정신적·육체적인 양육과 보호에 정성을 기울이고 집안 살림을 돌보는 등 가족으로서 충분히 그 책임을 분담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구인은 청구인의 부양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울증 증세까지 있는 피해자가 청구인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로 받은 충격, 피해자 수첩을 찢어버릴 경우 직계존속인 피해자가 받게 될 인격적 모멸감으로 인하여 청구인과 피해자 간 회복하기 어려운 관계에 이를 수 있다는 점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가 청구인의 남동생에게 전화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로지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가족구성원 중 존경과 보은의 대상인 피해자의 수첩 일부분을 무단으로 찢었고, 청구인의 남동생 전화번호가 기재된 뒷면에는 다른 정보도 기재되어 있었으므로, 이 사건 손괴 행위는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고, 우리 고유의 전통규범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워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볼 수도 없다.
결국 이 사건의 경우 피청구인이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수사를 하였다거나, 헌법의 해석, 법률의 적용 또는 증거판단을 함에 있어 중대한 잘못이 있었다고 보이지 아니하고, 달리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이 헌법재판소가 관여할 정도의 자의적인 처분이라고 볼 자료도 없을 뿐만 아니라, 피청구인도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바와 같은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이므로 이로 말미암아 청구인이 주장하는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여야 한다. 재판관 박한철(재판장)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