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문
피청구인이 2013. 3. 12. 서울중앙지방검찰청 2011년 형제116876호, 2012년 형제53849호 사건에서 청구인에 대하여 한 기소유예처분은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
가. 청구인은 2013. 3. 12. 피청구인으로부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사기)죄로 기소유예처분(서울중앙지방검찰청 2011년 형제116876호, 2012년 형제53849호, 이하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이라 한다)을 받았는데, 그 피의사실(이하 ‘이 사건 피의사실’이라고만 한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청구인, 안○순, 김○길, 신○분, 표○주, 장○희, 이○경, 김○, 조○련, 민○희, 박○옥, 이○자, 최○순, 정○애, 김○자, 이△자, 송○순, 김□자, 소○예, 서○숙, 고○덕, 신○숙, 박○이, 고○호, 이□자, 김○희, 유○련, 이○호, 서○호, 윤○화는 양○임, 장○희, 임○희와 공모하여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보상청구 소송이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로 종결되었음에도 일본정부로부터 피해변상을 받을 수 있다고 기망하여 2010. 3. 부터 2011. 1. 까지 피해자 약 3만 명으로부터 15억 원 상당을 편취하였다.’
나. 피청구인은, 피의사실은 인정되나, 피의자 양○임, 임○희가 범행을 주도하였고, 모집책인 청구인의 경우 주범인 양○임으로부터 조만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피해보상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듣는 등 편취의 고의가 확정적이지 않은 점 등을 참작하여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하였다.
다. 이에 청구인은 2013. 6. 4.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이 청구인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그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청구인의 주장과 피청구인의 답변 요지
가. 청구인의 주장요지
청구인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먼저 협상하고 그 협상이 잘 안 될 경우 다시 보상청구소송을 할 것이라는 사단법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이하, ‘유족회’라고만 한다) 대표 양○임의 말을 믿었고, 이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실제 피해자 또는 유족들만 신청할 수 있다. 국제변호사를 선임하여 먼저 협상하고 안 되면 나중에 소송할 것이다. 보상금 지급시기나 금액은 아직 알 수 없으며 우리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알리고 유족회 회원으로 받아들였을 뿐 피해자라고 주장만 하면 피해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면서 유족회 회원을 모집하지 않았다. 따라서 설사 주범인 피의자 양○임에게 범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청구인에게는 편취의 범의가 없었다. 또한, 청구인이 모집한 피해자들 외에 다른 피의자들이 모집한 피해자들에 대한 범행에 청구인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요지
피의자 양○임은, 이 사건 피의사실과 유사한 사기범행을 몇 차례 저지른 전력이 있던 장○희와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을 조직하여, 사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였던 ‘강제징집·징용된 한국인 군인, 군속, 노무자 등의 미불급료, 미수령 저축금의 반환을 구하는 소송’인 ‘아시아태평양전쟁 한국인희생자 보상 청구소송’이 2004. 11. 29. 패소 확정되었으므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일제 피해보상을 받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정부나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모두 소멸되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었으므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정치적 협상을 통해 일제 피해보상을 받을 가능성은 더더욱 불가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 태평양전쟁 전후 국·내외 강제 동원 피해 희생자 또는 생존자나 그 유가족이 아닌 이상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나 협상 등의 당사자가 될 수 없으므로, 애당초 피해자로부터 변호사 수임료 명목 등으로 돈을 받더라도 피해자에게 일제 피해 보상금을 받게 해 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 일제의 피해자라서 보상금을 받을 수 있어 가족 중에 1900년에서 1930년 사이에 태어난 남자만 있으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이나 협상을 통하여 1, 2천만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라는 거짓말을 하여 재물을 편취하였다.
그런데 양○임이 장○희와 별도로 유족회 조직을 통하여 유족회의 지회장 등인 청구인, 안○순, 김○길, 이○호에게도 위와 같은 거짓말로 회원을 모집하도록 하였고, 이에 따라 유족회의 지회장 등인 모집책들이 피해자들에게 위와 같은 거짓말을 하여 피해 보상금 신청 명목으로 금원을 교부받았다고 다른 모집책들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는 점, 2011. 11. 경까지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이나 유족회가 일본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보상금을 받아내려고 하는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점에 비추어 청구인에게 적어도 사기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
3. 판 단
가. 기본적인 사실관계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1) 태평양전쟁 전후 강제 동원된 피해자 또는 그 유가족을 회원으로 하는 유족회는 회원의 인권 신장과 복지증진 및 희생자 위령사업을 목적으로 1992. 9. 14. 설립되었는데, 양○임은 유족회 설립 당시 대표로 활동하다가 임기 만료로 물러난 후 2004년부터 다시 대표로 취임하였고, 청구인은 2010. 3. 경 유족회 회원으로 가입하였다가 양○임에 의하여 2010. 7. 경 ○○(을) 지회장에 임명되었다.
(2) 양○임은 유족회를 대표하여 2010. 1. 26. ○○최 변호사 및 로버트 □□ 변호사와 사이에 태평양전쟁 전후 강제징집·징용된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정부 등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수임인인 ○○최 변호사 등이 일본 정부와 협상을 추진하고 이차적으로는 일본 정부 등을 상대로 하는 보상소송을 추진하는 내용의 위임계약을 체결하였다. 양○임은 위 위임계약 체결 후 유족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2010. 3. 부터 2010. 10. 까지 태평양전쟁 전후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을 모집하여 위 위임계약을 토대로 한 수임계약서를 작성할 예정이고, 2010. 11. 초부터는 일본 정부와 미국 의원을 상대로 보상협상을 진행하며, 2010. 11. 부터는 일본 정부에 피해자 명단을 전달할 예정이라는 내용을 게시하였다.
(3) 이 사건에서의 피청구인 답변 내용 및 이 사건 피의사실과 관련된 수사기록의 내용에 의하면, 양○임이 위의 위임계약을 기초로 하여, ① 이 사건 피의사실과 유사한 수법으로 금원을 편취한 전력이 있는 장○희와 함께 장○희 측 모집책을 통하여 피해자들을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에 가입시키면서 금원을 편취하였다는 피의사실, ② 이와 별도로 장○희와 관련 없이 유족회의 지회장 등인 청구인, 안○순, 김○길, 이○호를 통하여 피해자들을 유족회에 가입시키면서 금원을 편취하였다는 피의사실로 나눌 수 있는데, 피청구인은 위 각 피의사실을 구분하지 않고 일괄하여 위 각 피의사실과 관련된 피의자들이 모두 함께 공모하여 금원을 편취하였다는 내용으로 이 사건 피의사실을 구성하였다.
(4) 청구인은 2010. 7. 부터 2010. 12. 경까지 피해자 905명을 유족회 회원으로 모집하여 7,975만 원을 교부받았는데, 피해자들을 모집하면서 ① 소송의뢰인이 강제 동원된 피해자이거나 유가족임을 확인하는 조항과 유족회와 ○○ 최 변호사 사이의 2010. 1. 26. 자 위임계약 내용대로 소송의뢰인이 ○○ 최 변호사 등에게 위임한다는 조항으로 이루어진 ‘변호사 수임계약서’, ② 피해자가 강제징용, 군인, 군속, 노무자 중 어느 피해자에 해당하는지 적게 되어 있는 ‘실태조사서’ 등을 작성하여 교부받았다. 청구인은 위와 같이 모집한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돈 전부를 유족회 계좌에 입금하였고, 양○임으로부터 접수활동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1,748만 원을 지급받았다.
(5) 한편, 일본의 총리이던 하토야마 유키오는 2010. 3. 경 미국 의원과의 면담에서 과거사와 관련하여 보상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고, 또한 일본의 관방장관이던 센고쿠 요시토는 2010. 7. 7. 일본 외국인특파원협회 주최 기자회견에서 한일청구권 협정이 법률적으로 정당성이 있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끝났다고 할 수 없고,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 정치적인 방침을 정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 청구인이 모집한 피해자들에 대한 편취 범의 유무
청구인은 앞서 본 것처럼 이 사건 피의사실의 주범 중 한사람인 유족회 대표 양○임과는 달리 유족회의 ○○순천(을) 지회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설사 피해자들로부터 피해보상금 신청 명목으로 금원을 받아도 일본 정부에게서 피해보상금을 받아 줄 의사와 능력이 양○임에게 없었더라도 청구인이 양○임과 범행을 공모하였다는 사정이 없는 한 청구인 역시 그와 같은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양○임이 유족회를 대표하여 ○○ 최 변호사 등과 사이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하는 보상협상을 위임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고 그 위임계약을 기초로 유족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보상일정을 게시한 점, 청구인이 피해자를 모집하기 전에 일본 정부의 총리와 관방장관이 피해 보상에 관하여 긍정적인 견해를 밝힌 점에 비추어 볼 때 유족회의 지회장에 불과한 청구인으로서는 일본 정부로부터 강제동원 피해자의 피해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을 개연성이 있다.
피청구인은 또한, 실제로 강제 동원된 피해자나 유가족이 아니라도 가족 중에 1900년에서 1930년 사이에 태어난 남자만 있으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여 피해자들을 모집하였다는 유족회 모집책 이○호, 안○순의 진술과 장○희 측 모집책의 진술을 근거로 하여 청구인도 그와 같이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모집하였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그들이 그와 같이 모집하였다고 하여 청구인도 그들처럼 모집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청구인이 피해자를 모집하면서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증거에 의하여 확인하지 않은 점이 있기는 하지만, 피해자들로부터 자신이 태평양전쟁 전후 강제동원 피해자나 그 유가족임을 확인하는 내용의 ‘변호사 수임계약서’와 ‘실태조사서’를 제출받은 점에 비추어 볼 때에 위 각 서면이 지극히 형식적으로 작성되었다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없는 이상 위 각 서면대로 실제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피해자들을 모집한 것으로 추정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청구인이 모집한 피해자들과 관련하여 이 사건 피의사실의 주범 중 한사람인 양○임에게 사기죄가 성립한다 하더라도 청구인에게는 앞서 본 것과 같이 편취의 범의가 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
다. 다른 피의자들이 모집한 피해자들에 대한 범행에의 가담 여부
피청구인은, 유족회의 다른 모집책에 의한 사기 범행뿐만 아니라 장○희 측 모집책에 의한 사기 범행에 대하여도 청구인이 가담하였다고 하지만, 청구인이 유족회의 ○○(을) 지회장이라는 것 외에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어서, 청구인이 그와 같은 범행에 가담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
라. 수사미진의 점
따라서 피청구인으로서는 청구인이 모집한 피해자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통하여 청구인이 피해자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하였는지 확인하고, 양○임과 안○순 등 다른 피의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청구인이 주범이라는 양○임과 금원을 편취하려고 공모하였는지, 다른 피의자가 피해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청구인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확인함으로써 청구인에게 편취의 범의가 있었는지, 다른 피의자들이 모집한 피해자에 대한 범행에 어떻게 가담하였는지 판단하였어야 한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이를 충분히 수사하지 아니한 채 바로 이 사건 피의사실에 대한 혐의를 인정한 잘못이 있다.
위와 같이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에는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의 잘못이 있으므로 자의적인 검찰권의 행사라 아니할 수 없고, 그로 말미암아 헌법이 보장하는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
4. 결 론
청구인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기로 하여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판관 박한철(재판장)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