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결정
청구인천○봉 (대리인 법무법인 ○테나 담당변호사 ○○○ ○ ○○)
주 문
피청구인이 2012. 11. 30. 서울중앙지방검찰청 2012년 형제103819호 사건에서 청구인에 대하여 한 기소유예처분은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
가. 청구인은 2012. 11. 30. 피청구인으로부터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처분(서울중앙지방검찰청 2012년 형제103819호, 이하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이라 한다) 을 받았는바, 그 피의사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청구인은 2012. 10. 24. 경 인천발 소요산행 ○○전동열차가 ○○역에서 정차하였을 때 그 열차 두 번째 객차 내에서 피해자 방문석이 노약자석 선반 위에 올려 놓은 피해자 소유의 검정색 지갑 등이 들어 있는 노트북 가방을 가지고 가 이를 절취하였다.”
나. 피청구인은 위 피의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청구인이 초범이며, 피해자와 합의하였다는 점 등을 참작하여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하였다.
다. 이에 청구인은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이 청구인의 평등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2013. 5. 7. 그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청구인의 주장 및 피청구인의 답변 요지
가. 청구인의 주장요지
청구인은 만취한 상태에서 전철에서 하차할 때 선반에 올려져 있던 피해자의 가방을 청구인의 가방으로 오인하여 들고 내리게 되었고, 청구인은 위 가방이 자신의 가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이후 피해자에게 연락하여 반환하는 등 이 사건 당시 위 가방 및 그 내용물을 취득할 의사가 전혀 없었으므로 절도의 범의 및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요지
청구인은 이 사건 당일 정작 자신의 가방의 소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았고, CCTV 영상 자료에 의하면 지하철역에서 피해자 소유의 가방을 들고 나오면서 가방 안을 살펴보기도 하는 장면이 확인되며, 이 사건 발생 다음날 자신의 가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다액의 현금까지 들어 있던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즉시 연락하여 알리는 것이 상식적이라 할 것임에도 확인한 다음날에 이르러서야 그 조치를 취한 점에 비추어 보면 청구인의 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은 정당하다.
3. 판 단
가. 인정되는 사실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1) 청구인은 이 사건 당시 ○○구청 행정주사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대학교 ○○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2) 피해자는 2012. 10. 24. 전철로 귀가하면서 그 객실 선반 위에 현금 107만 원,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신용카드, 검정색 지갑 등이 들어 있는 검정색 노트북 가방을 올려 놓았다.
(3) 청구인은 이 사건 당일 친구와 술을 마신 후 전철을 이용하여 귀가 중 2012. 10. 24. 21:28경 ○○역에서 내리면서 위 가방을 가지고 내린 후 2012. 10. 26. 오전 피해자에게 청구인이 가지고 간 물건을 그대로 반환하면서 위로금 조로 추가로 10만 원을 지급하였다.
(4) CCTV 영상을 보면 청구인은 전철에서 가방을 들고 내린 이후 고개를 숙인 채 그곳에 있는 기둥에 한동안 기대었다가 조금 이동하고 다시 벽에 기대는 것을 반복하는 등 정상적인 보행을 하지 못하고 술에 만취한 외관을 보이며, 지하철 역 내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가방 안을 살펴보았다.
나. 쟁점 및 검토
(1) 쟁점
이 사건에서의 쟁점은 청구인에게 절도의 범의 및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는지 여부이다.
(2) 절도의 범의 및 불법영득의사 인정 여부
(가) 절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불법영득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 또는 처분하려는 의사이다(대법원 1996. 5. 10. 선고 95도3057 판결; 대법원 2000. 10. 13. 선고 2000도3655 판결 참조).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영구적으로 그 물건의 경제적 이익을 보유할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점유의 침해만으로는 절도죄를 구성할 수 없고, 소유권 또는 이에 준하는 본권을 침해하는 의사, 즉 소유자 등을 종래 지위에서 영원히 제거한다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대법원 1992. 9. 8. 선고 91도3149 판결 참조).
(나) ① ○○역 CCTV 영상을 보면 청구인이 전철에서 내려서 고개를 숙인 채 비틀거리며 제대로 보행을 하지 못하고 기둥 등에 한참을 기대었다가 비틀거리면서 다시 걷는 등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 전철 선반에 있던 가방을 들고 내릴 당시에도 술에 만취된 것으로 보이고, 청구인이 당시 ○○대학교에 재학 중이어서 책가방을 가지고 다닐 기회가 많았으므로, 술에 만취하여 자신의 가방으로 오인하고 피해자의 가방을 가지고 내린 것으로 보인다. 물건을 분실한 직후 ○○역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할 당시 피해자도 ‘청구인이 비틀비틀하는 모습을 보았으며 청구인이 고의적으로 가지고 간 것 같지는 않고 술에 취해서 잘못 가지고 간 것 같다’(수사기록 제9쪽)라고 진술하고 있어 이에 부합한다.
② 또한 청구인은 범죄전력이 없는 52세의 행정공무원으로서 노모 및 처, 자녀 등과 함께 생활하면서 학구열까지 있어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자로서 전철 객실 내부의 공개된 장소에서 범행을 할 만한 특별한 동기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③ 더욱이 CCTV 영상만으로는 청구인의 인적사항을 특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청구인이 이와 같이 가방을 가져간 이후 단기간에 자발적으로 피해자에게 물건을 그대로 반환한 점에 비추어 청구인에게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④ 비록 청구인이 전철에서 내린 후 에스컬레이터로 계단을 올라가면서 가방 속의 내용물을 확인하는 듯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당시 만취 상태인 청구인이 위 가방이 타인의 물건이라는 사실까지 인식하고 영득의 의사로 이를 가져갔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록에 나타난 사실관계만으로는 청구인에게 절도의 범의 및 불법영득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 수사미진 및 법리오해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청구인에게 절도의 범의 및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는지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 사건 당시 청구인이 술에 얼마나 취한 상태였었는지, 공개된 지하철 객실 내에서 청구인이 그 선반 위에 올려져 있던 타인의 노트북 가방을 가져갈 만한 절도의 범행 동기가 있었는지, 청구인이 당시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바 가방을 가지고 출퇴근한 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떠한 모양의 가방을 가지고 다녔는지, 그리고 청구인이 집에 들고 온 이 사건 가방 및 그 내용물을 이틀 후 반환한 경위 등을 좀 더 면밀하게 조사하였어야 한다.
그런데도 피청구인은 아무런 추가조사를 하지 아니한 채 오로지 청구인이 이 사건 가방을 가져갔다는 사실만을 이유로 곧바로 절도 피의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전제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하였는바, 이는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 또는 법리오해에 터 잡아 이루어진 것이다.
라. 소결
피청구인이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은 수사미진 및 법리오해의 잘못이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라 할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
4. 결 론
그렇다면 청구인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기로 하여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판관 박한철(재판장)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