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정의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반민규명법’이라 한다) 제2조 제13호(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가 명확성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소극)
나. 심판대상조항이 인격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소극)
재판요지
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심판대상조항의 조문구조 및 어의, 다른 규정들과의 체계조화적인 이해를 통해 심판대상조항이 기관이나 단체가 친일적 성격을 가질 것이나 행위자가 기관 또는 단체의 임원이나 구성원일 것을 요건으로 하지 아니한다는 점, “내선융화와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한 행위”가 일본의 전쟁동원 및 한민족말살정책을 적극 주도한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는 점, 단순한 가담이나 협조를 넘어서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주동하는 위치에서 이끄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야 비로소 심판대상조항의 적용대상이 된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은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나. 심판대상조항은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함에 그 목적이 있는바 그 정당성이 인정되고, 심판대상조항의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정의하여 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러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에 해당한다. 그리고 심판대상조항이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에 단순 가담하거나 협력한 것에 불과한 경우를 친일반민족행위에서 제외시킨 점, 반민규명법이 조사대상자가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에 참여 또는 지원한 사실이 있는 때에는 이러한 사실을 함께 조사하도록 하고 그 내용을 조사보고서 및 사료에 기재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조사대상자, 그 배우자와 직계비속 또는 이해관계인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조사결과를 다툴 수 있는 절차를 충분히 마련하고 있는 점, 조사보고서 및 편찬된 사료를 공개하는 것 이외에 조사대상자나 그 유족에 대한 어떠한 불이익도 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심판대상조항은 침해의 최소성에 위배되지 아니하며, 후세에게 역사의 교훈을 남기고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될 수 있도록 공동체의 윤리를 정립하고자 하는 공익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법익의 균형성에도 반하지 아니한다.
‘일제강점하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2005. 1. 27. 법률 제7361호로 개정된 것) 제2조 제13호는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 및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청구외 망 구○옥(1890. 3. ∼1950. 11. , 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1930년대 후반부터 황도학회 이사 등 친일단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일본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다수의 글을 발표한 사람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반민규명위원회’라 한다)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반민규명법’이라 한다)에 따른 조사를 거쳐 2009. 7. 6. 망인의 이와 같은 행위가 반민규명법 제2조 제13호에 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하였다(이하 ‘이 사건 결정’이라 한다).
(2) 이에 망인의 아들인 청구인 구○모는 2009. 12. 7. 이 사건 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가(서울행정법원 2009구합52837), 기각되자 항소하였으며(서울고등법원 2011누2097), 망인의 증손녀로서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청구인 구○은은 항소심에서 청구인 구○모의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참가하였다. 청구인들은 항소심 계속 중 이 사건 결정의 근거가 된 반민규명법 제2조 제13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하였으나(서울고등법원 2011아409), 위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이 기각되자, 2012. 1. 6. 위 조항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5. 1. 27. 법률 제7361호로 개정된 것) 제2조 제13호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며, 심판대상조항 및 관련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5. 1. 27. 법률 제7361호로 개정된 것)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친일반민족행위”라 함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행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13.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관련조항]
별지 기재와 같다.
2. 청구인들의 주장요지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이념적 구호에 불과한 것으로 그 의미가 추상적이고, “적극 주도” 역시 위 표현만으로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는 친일반민족행위의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심판대상조항의 내용이 불명확하여 이에 대한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이상,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상 명확성원칙에 위배된다.
또한 심판대상조항은 기관이나 단체가 친일적 성격을 가졌는지를 불문하고 사회·문화기관이나 단체를 통하기만 하면 이를 친일반민족행위로 인정하면서 행위의 주체나 내용조차 제한하지 않고 있다. 또한 친일반민족행위가 기재된 조사보고서 및 사료 전체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공개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공개기간을 전혀 제한하고 있지 아니하며, 조사보고서와 사료의 공개 시점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행정소송의 제소기간이 경과하기도 전에 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조사대상자 및 조사대상자의 유가족인 청구인들의 인격권을 침해한다.
3. 판 단
가. 심판대상조항의 입법취지 및 내용
(1) 심판대상조항의 입법취지
일본의 식민통치기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제1기는 한일합병에서 3·1운동 전까지의 시기(1910∼1919), ② 제2기는 3·1운동 이후부터 만주사변 전까지의 시기(1919∼1931), ③ 제3기는 만주사변 이후부터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할 때까지의 시기(1931∼1945)이다. 제1기에 헌병과 경찰을 내세운 강압정치로 상징되는 무단통치를 하던 일본은 3·1운동을 계기로 조선인의 저항을 줄이고 국제적인 여론을 호전시키기 위하여 이른바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 내선융화(內鮮融和)를 주창하였다. 내(內)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전 해외식민지를 외지(外地)로, 일본 본토를 내지(內地)로 칭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본을 의미하고, 선(鮮)이란 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내선융화(內鮮融和)는 일본과 조선이 서로 융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내선융화는 “문화적 제도의 혁신을 통해서 조선인을 가르치고 이끌어 그 행복과 이익을 증진하고 장래 문화의 발달과 민력(民力)의 충실에 따라 궁극적으로 정치상·사회상의 대우도 내지인과 동일하게 함”을 의미하는 “일시동인(一視同人)”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일시동인이 조선인을 일본인과 같이 지도, 계몽하여 제도적으로 동일한 처우를 받도록 하겠다고 표방한 것이라면, 내선융화는 조선인을 일본인과 사상적으로 융화시켜 같은 사상이나 사고를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황민화운동은 조선인을 일본 천황의 신하된 백성(臣民)으로 만드는 일종의 민족말살정책으로, 1931년 제7대 총독으로 취임한 우가키 가즈시게에 의하여 전개되었다. 황민화운동은 한민족의 고유성을 말살하기 위한 시책, 황국신민화하기 위한 시책, 전쟁동원을 위한 시책의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며, 여기에는 신사참배, 황국신민서사 제창, 기미가요 보급, 일본어 보급, 조선어로 된 출판물 전면 강제 폐간, 창씨개명, 침략전쟁을 위한 징병 및 강제동원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일본인과 조선인이 완전히 융화되도록 한다는 내선융화 및 조선인에게 철저한 황국신민이 될 것을 요구하는 황민화운동은 사실상 일본의 침략전쟁에 한민족을 동원·이용하기 위한 강압정책이었으며 철저한 민족말살정책이었다. 내선융화와 황민화라는 미명 아래, 일본은 한반도 징병제, 학도병제 등을 실시하여 남성들을 침략전쟁에 대규모로 동원하였으며, 여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강제 동원하여 성적으로 학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침략전쟁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조선에 대한 경제적 수탈을 강화하였다.
심판대상조항은 이처럼 내선융화와 황민화운동이 제2기와 제3기 식민통치기 일본의 핵심적인 통치정책이며, 민족말살, 인력동원, 경제수탈로 상징되는 이러한 통치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행위가 이 시기에 이루어진 가장 전형적인 친일반민족행위라는 점을 고려하여,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 활동을 통해 일제의 내선융화와 황민화운동이라는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포장하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유포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2) 심판대상조항의 내용
심판대상조항은 반민규명법 제2조 제4호나 제17호와는 달리 단체의 장 또는 간부일 것을 자격요건으로 정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단체의 구성원일 것조차 요구하지 않고 있으므로, 단체의 장이나 간부, 구성원이 아닌 경우에도 단체가 출판하는 잡지에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를 촉구하는 글을 발표하거나 단체의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하는 행위는 모두 심판대상조항에 근거한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된다.
반민규명위원회는 심판대상조항에 의하여 친일반민족행위로 포섭되는 구체적인 행위로 ① 집필행위를 통하여 내선융화나 황민화를 주도한 유형, ② 집필행위를 통하여 대동아공영권이나 침략전쟁을 찬양한 유형, ③ 집필행위를 통하여 ‘총후봉공(銃後奉公: 총을 뒤로 하고 공공사회를 위하여 봉사한다는 것으로, 전시체제하에서 전쟁수행을 위해 적극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을 제시·찬양한 유형, ④ 집필행위를 통해 황도문학, 국민문학 등을 내세우며 문학인들을 대상으로 전쟁 시기 국책문학의 선전에 앞장선 유형, ⑤ 홍아보국단 준비위원회, 임전대책협력회, 조선임전보국단, 조선언론보국회, 황도학회, 대화동맹, 국민훈련후원회, 국민동지찬성회, 삼천리사, 인문사, 동양지광사 등과 같은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의 활동에 소속원으로 참여한 유형, ⑥ 총독부 외곽단체인 조선문예회나 외곽기관인 조선방송협회 등과 같은 총독부 외곽단체나 기관의 활동에 해당 단체·기관의 장 또는 간부가 아닌 소속원으로 참여한 유형, ⑦ 반민규명법 제2조 제4호와 제17호가 적용되는 단체나 기관의 활동에 해당 단체·기관의 소속원이 아닌 상태로 참여한 유형의 일곱 가지를 들고 있는데, 주로 교육, 언론, 국내외 정치·사회단체, 학술, 문예 영역에서의 행위가 심판대상조항의 적용대상이 된다.
나. 심판대상조항이 명확성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
(1) 헌법상 명확성원칙
법치국가 원리의 한 표현인 명확성원칙은 기본적으로 모든 기본권제한 입법에 대하여 요구되지만, 모든 법률에 있어서 동일한 정도로 요구되는 것은 아니고 개개의 법률이나 법조항의 성격에 따라 요구되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각각의 구성요건의 특수성과 그러한 법률이 제정되게 된 배경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명확성원칙을 산술적으로 엄격히 관철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므로 어느 정도의 보편적 내지 일반적 개념의 용어사용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당해 법률이 제정된 목적과 타 규범과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한지의 여부에 따라 명확성의 구비 여부가 가려져야 하고, 설혹 법문언에 어느 정도의 모호함이 내포되어 있다 하더라도 법관의 보충적인 가치판단을 통해서 법문언의 의미내용을 확인할 수 있고 그러한 보충적 해석이 해석자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없다면 명확성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헌재 2005. 12. 22. 2004헌바45, 판례집 17-2, 712, 721; 헌재 2011. 3. 31. 2008헌바141등, 판례집 23-1상, 276, 300 참조).
(2) 구체적인 판단
심판대상조항은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 또는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라고 명시함으로써 단체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반민규명법 제2조 제4호, 제17호와 달리 단순히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라고만 규정하고 있으며, “기관이나 단체의 장 또는 간부”라는 자격요건 또한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조문구조 및 어의, 다른 규정들과의 체계조화적인 이해를 통해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은 심판대상조항의 기관이나 단체가 친일적 성격을 가진 단체 등에 국한되지 아니하며, 기관 또는 단체의 일반 구성원뿐만 아니라 단체에 소속되지 아니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의 식민통치정책을 적극 주도한 경우에는 심판대상조항의 적용대상이 됨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내선융화”는 일본과 조선이 서로 융화되어야 함을, “황민화운동”은 조선인을 일본 천황의 신민(臣民)으로 만드는 운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양자는 모두 일본이 전쟁을 위해 조선인을 마음대로 동원·사용하고자 시행한 한민족말살정책이다. 반민규명법이 제정된 배경, 일본 식민통치기의 역사적 상황 등에 비추어 볼 때, “내선융화와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하는 행위”는 조선인들에게 창씨개명 및 신사참배를 촉구하고 젊은이들의 징병 및 위안부 동원을 선전·선동하는 등 일본의 한민족말살정책을 적극 주도한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는 점이 분명하고 해석자의 자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여지도 없다.
그리고 “적극(積極)”은 “대상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주도(主導)”는 “주동적인 처지가 되어 이끄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문제되는 행위의 내용이나 속성, 행위자의 지위, 행위의 의도나 횟수, 그 당시 보인 다른 행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 보았을 때, 단순한 가담이나 협조를 넘어서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주동하는 위치에서 이끄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야 비로소 심판대상조항의 적용 대상이 된다는 점이 법문언상 명백하다.
더 나아가,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셀 수 없이 많은 사회·문화기관이나 단체가 설립되어 출판, 언론활동, 채권판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였고, 개개인이 이러한 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과 같은 민족말살정책을 적극 주도한 행위 태양 역시 지나치게 다양하여 입법기술상 이를 일일이 특정하여 규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입법기술상 심판대상조항을 더 구체화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문구조나 다른 규정들과의 체계조화적인 이해, 반민규명법의 제정목적에 대한 고려 등을 통하여 심판대상조항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고 입법기술의 한계상 그 내용을 더 구체화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이상, 심판대상조항은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다. 심판대상조항이 인격권을 침해하는지 여부
(1) 인격권의 제한
헌법 제10조로부터 도출되는 일반적 인격권에는 개인의 명예에 관한 권리도 포함되는바(헌재 2005. 10. 27. 2002헌마425, 판례집 17-2, 311, 319 참조), 심판대상조항에 근거하여 반민규명위원회의 조사대상자 선정 및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 이루어지면, 조사대상자의 사회적 평가가 침해되어 헌법 제10조에서 유래하는 일반적 인격권이 제한받는다.
다만 이 사건 결정의 조사대상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조사대상자는 이미 사망하였을 것이 분명하나, 조사대상자가 사자(死者)인 경우에도 인격적 가치에 대한 중대한 왜곡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고, 사자(死者)에 대한 사회적 명예와 평가의 훼손은 사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스스로의 인격상을 형성하고 명예를 지켜온 그들 후손의 인격권, 즉 유족의 명예 또는 유족의 사자(死者)에 대한 경애추모의 정을 침해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조사대상자의 사회적 평가와 아울러 이를 토대로 인격상을 형성하여 온 그 유족들의 인격권을 제한한다(헌재 2010. 10. 28. 2007헌가23, 판례집 22-2상, 761, 767-768; 헌재 2011. 3. 31. 2008헌바111, 판례집 23-1상, 258, 267-268 참조).
(2) 과잉금지원칙 위배 여부
(가) 목적의 정당성
심판대상조항을 비롯한 반민규명법의 입법목적은, 헌법 전문에서 천명된 3·1 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의 의미를 되살려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 전쟁 개전시부터 1945. 8. 15. 까지 일본제국주의를 위하여 행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함에 있는바(반민규명법 제1조), 이러한 입법목적은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공공복리를 위한 것으로서 정당성이 인정된다(헌재 2010. 10. 28. 2007헌가23, 판례집 22-2상, 761, 768; 헌재 2011. 3. 31. 2008헌바111, 판례집 23-1상, 258, 268 참조).
(나) 수단의 적절성
심판대상조항에 근거하여 반민규명위원회는 조사대상자의 행위가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보고서 작성 및 사료편찬 작업을 통하여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에까지 나갈 수 있으므로,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기 위하여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포장하고 유포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정의한 심판대상조항은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기 위한 입법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적합한 수단이다(헌재 2010. 10. 28. 2007헌가23, 판례집 22-2상, 761, 768; 헌재 2011. 3. 31. 2008헌바111, 판례집 23-1상, 258, 268 참조).
(다) 침해의 최소성
1)과거사 청산의 대의와 긴절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60여년 내지 100여년 전에 있었던 친일반민족행위를 지금에 와서 규명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적 평가라는 가치 판단의 문제가 개입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의 상충 문제도 복합적으로 제기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이 일은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소통과 사회적 토론을 거쳐 이루어낼 수밖에 없다. 즉, 어떠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할 것인지 여부는 역사적 진실 및 민족적 정통성의 확인이라는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원칙적으로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가 역사학계를 비롯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역사의식과 도덕적 기준, 그에 대한 규범적 평가를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반민규명법이 민주적 숙의과정 및 공론을 거쳐 제정되었고, 특정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기로 하는 데 대한 민주적이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이상, 헌법재판소로서는 원칙적으로 그 입법적 판단을 존중함이 옳다(헌재 2010. 10. 28. 2007헌가23, 판례집 22-2상, 761, 768; 헌재 2011. 3. 31. 2008헌바111, 판례집 23-1상, 258, 268-269 참조).
2)내선융화와 황민화운동은 일본이 한국민족의 고유성을 말살시키고, 한국인을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하여 실시한 정책이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에 포함시키는 것은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반민규명법의 입법목적에 비추어 적절하다. 또한 단체의 장 또는 간부 등의 직에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민족을 전쟁에 동원하고 민족문화를 말살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고 역사적 진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국민의 법감정에 반하는 것이고, 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한민족말살정책을 적극 주도한 행위는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개인의 행위에 비해 영향력이 훨씬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심판대상조항이 행위자의 지위를 기관이나 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 제한하거나 행위태양을 구체적으로 한정하지 않고 있다고 하여 이를 과도한 제한이라 할 수는 없다. 특히 심판대상조항이 그 행위를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한 것으로 한정하여 이러한 통치정책에 단순히 가담하거나 협력한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친일반민족행위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더더욱 이를 지나친 제한이라 볼 수 없다.
3)반민규명법은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조사를 위하여 조사대상자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에 참여 또는 지원한 사실이 있는 때에는 이러한 사실을 함께 조사하도록 하고, 그 내용을 조사보고서 및 사료에 기재하도록 정하고 있으며(반민규명법 제20조), 조사대상자의 보호를 위하여 조사내용의 공개금지규정을 두는 한편 반민규명위원회에 대하여 조사대상자의 사생활 및 명예 등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같은 법 제23조). 그리고 반민규명법이 조사보고서 및 사료의 공개시기를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하지 아니하여 위 자료들이 사실상 영구히 보존·공개되도록 한 것 역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을 확인하고 이를 후세에 알림으로써,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한다는 반민규명법의 입법목적에 비추어 결코 지나친 제한이 아니다.
청구인들은 반민규명법에 공개시기에 대한 명시적 규정을 마련하지 아니함으로써 반민규명위원회가 행정소송의 제소기간이 경과하기도 전에 조사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실질적인 권리구제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반민규명법은 ① 조사대상자의 선정 단계에서 그 선정사실을 조사대상자, 그 배우자와 직계비속 또는 이해관계인에게 통지하도록 하고, 통지대상자가 60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고(반민규명법 제19조 제2항, 제5항), ② 조사가 진행 중인 단계에서 조사대상자, 그 배우자와 직계비속 또는 이해관계인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부여하고, 증거자료의 열람청구권 및 변호인선임권을 보장하고 있으며(같은 법 제24조), ③ 친일반민족행위로 확정된 경우 다시 그 내용을 조사대상자, 그 배우자와 직계비속 또는 이해관계인에게 통지하도록 하고, 통지대상자가 60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으며(같은 법 제28조 제1항, 제4항), 이의신청 결과가 종료된 후에야 비로소 조사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등 조사대상자, 그 배우자와 직계비속 또는 이해관계인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조사결과를 다툴 수 있는 장치를 충분히 마련하고 있다.
나아가 반민규명법은 심판대상조항에 근거하여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 있더라도 그 조사활동에 부수하여 작성된 조사보고서 및 편찬된 사료를 공개하는 것 이외에 조사대상자나 그 유족에 대한 어떠한 불이익도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는바, 이는 처벌 내지 공민권 제한 등을 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 등 여타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입법에 비하여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헌재 2010. 10. 28. 2007헌가23, 판례집 22-2상, 761, 769; 헌재 2011. 3. 31. 2008헌바111, 판례집 23-1상, 258, 269-270 참조).
4) 이처럼 심판대상조항이 조사대상자와 그 유족 등의 기본권제한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이보다 덜 제한적인 방법을 발견할 수 없는 이상, 심판대상조항은 피해의 최소성 요건을 갖춘 것이다.
(라) 법익의 균형성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이에 대한 사료를 남기고 이를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자료로 삼아 후세에게 역사의 교훈을 남기는 한편,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될 수 있도록 공동체의 윤리를 정립하고자 하는 공익의 중대성은 막대하다. 이에 반해서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해 제한되는 조사대상자와 그 유족의 인격권은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조사보고서와 사료가 공개됨으로 인한 것일 뿐이며, 공개의 시기에 제한이 없어 사실상 이 자료가 영구히 보존·공개된다는 이유만으로 조사대상자와 그 유족의 인격권 침해가 중대하다고 볼 수는 없다.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공익과 사익간의 균형성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법익의 균형성에도 반하지 아니한다(헌재 2010. 10. 28. 2007헌가23, 판례집 22-2상, 761, 770; 헌재 2011. 3. 31. 2008헌바111, 판례집 23-1상, 258, 270 참조).
4. 결 론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