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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시사항

인수자가 없는 시체를 생전의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해부용 시체로 제공될 수 있도록 규정한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2012. 10. 22. 법률 제11519호로 개정된 것) 제12조 제1항 본문(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이 청구인의 시체처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적극)

재판요지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인수자가 없는 시체를 해부용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인(死因)의 조사와 병리학적·해부학적 연구의 기초가 되는 해부용 시체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여 국민 보건을 향상시키고 의학 교육 및 연구에 기여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은 인정된다. 최근 5년간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인하여 인수자가 없는 시체를 해부용으로 제공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고, 실제로 의과대학이 필요로 하는 해부용 시체는 대부분 시신기증에 의존하고 있어 이 사건 법률조항이 아니더라도 의과대학에서 필요로 하는 해부용 시체는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공급될 수 있다. 그런데 시신 자체의 제공과는 구별되는 장기나 인체조직에 있어서는 본인이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경우 이식·채취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법률조항은 본인이 해부용 시체로 제공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사표시를 명시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하지 않고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해부용 시체로 제공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고, 실제로 해부용 시체로 제공된 사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추구하는 공익이 사후 자신의 시체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해부용 시체로 제공됨으로써 침해되는 사익보다 크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청구인의 시체 처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참조판례

헌재 1990. 9. 10. 89헌마82, 판례집 2, 310

사건
2012헌마940 시체해부및보존에관한법률제12조제1항위헌확인
청구인
손○아 (국선대리인 변호사 ○○○)
판결선고
2015. 11. 26.

주 문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2012. 10. 22. 법률 제11519호로 개정된 것) 제12조 제1항 본문은 헌법에 위반된다.

이 유

1. 사건개요 가. 청구인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루푸스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1962년생 미혼 여성으로서, 부모는 모두 사망하고 형제들과는 30여 년간 연락이 두절되어 사실상 연고가 없는 사람이다. 나. 청구인은 2012. 5. 30. 경 언론보도를 통해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제12조 제1항 본문에 의하여 청구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청구인 사망 후 그 시체를 인수하는 사람이 없으면 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제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청구인은 2012. 8. 24. 국선대리인선임신청을 하고 2012. 11. 23. 위 조항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2012. 10. 22. 법률 제11519호로 개정된 것, 이하 ‘시체해부법’이라 한다) 제12조 제1항 본문(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심판대상조항은 다음과 같고, 관련조항은 [별지] 와 같다. [심판대상조항]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2012. 10. 22. 법률 제11519호로 개정된 것) 제12조(인수자가 없는 시체의 제공 등) ①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은인수자가 없는 시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시체의 부패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고 의과대학의 장에게 통지하여야 하며, 의과대학의 장이 의학의 교육 또는 연구를 위하여 시체를 제공할 것을 요청할 때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그 요청에 따라야 한다. 단서 생략 3. 청구인의 주장 이 사건 법률조항이 인수자가 없는 시체를 해부용으로 제공하는 요건과 절차를 규정하면서, 생전에 본인이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전혀 규정하지 않는 것은 청구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4. 판 단 가.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연혁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은 일제시대 전후 경제적 빈곤 시기에 아무런 연고 없이 길거리에서 죽은 행려 사망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시신 훼손을 금기시하고 화장을 꺼리는 오랜 전통적, 유교적 관습에서 비롯된 매장문화로 인해 해부용 시체의 확보는 대부분 행려병자나 무연고 시체에 의존해야 했고, 그 수도 부족하였다. 그러던 중 1962. 2. 9. 법률 제1021호로 제정된 시체해부보존법에 따라 의과대학장의 요청이 있을 경우 시장, 군수, 구청장은 인수자가 없는 시체를 의과대학에 교부할 수 있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국내 의과대학들이 증설되어 해부용 시체의 수요는 높아졌음에도, 우리 사회의 발전에 따라 국민의 생활과 복지수준이 향상되고 주민등록시스템이 전산화되는 등으로 인해 인수자가 없는 시체의 수가 급속히 감소하였으며, 해부용 시체의 확보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에 시체해부보존법은 1995. 1. 5. 법률 제4915호로 전부개정되면서, 그 명칭이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로 변경되고, 인수자가 없는 시체에 대하여 의과대학장의 교부요청이 있는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응하도록 함으로써 의과대학이 더 많은 해부용 시체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후 2012. 10. 22. 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개정되었으나 큰 변화 없이 그 내용이 유지되어 왔다. 나. 제한되는 기본권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모든 기본권 보장의 종국적 목적(기본이념)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이며 고유한 가치인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의 인격권, 행복추구권에서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파생된다(헌재 1990. 9. 10. 89헌마82 참조). 만일 자신의 사후에 시체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처리될 수 있다고 한다면 기본권 주체인 살아있는 자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인의 생전 의사에 관계없이 인수자가 없는 시체를 해부용으로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청구인의 시체의 처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할 것이다. 다.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 (1)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인수자가 없는 시체를 해부용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인(死因)의 조사와 병리학적·해부학적 연구의 기초가 되는 해부용 시체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여, 국민 보건을 향상시키고 의학의 교육 및 연구에 기여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은 인정된다. (2) 침해의 최소성 우선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하여 인수자가 없는 시체를 해부용으로 제공하는 사례가 거의 없어져 그 실효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발생한 인수자가 없는 시체 중 의과대학에 통지된 것은 2건, 그 중 실제로 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제공된 시체는 단 1건에 불과했다. 또한 의과대학에서 필요로 하는 해부용 시체는 이 사건 법률조항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공급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에 따라 시신기증이 활발히 이루어져 현재 해부용 시체의 공급은 대부분 시신기증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시신의 훼손이나 화장을 꺼리는 장제 문화의 변화, 적절한 홍보활동, 기증자와 그 유가족의 숭고한 뜻이 존중될 수 있는 적절한 예우 등을 통해 시신기증을 활성화함으로써 해부용 시체의 공급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현행 법령은 시체 자체의 제공과는 구별되는 장기나 인체조직에 있어서는 본인이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경우에는 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식·채취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신장·간장·심장·안구·골수 등의 적출·이식과 관련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22조는 뇌사자와 사망한 자의 장기에 대하여는 생전에 본인이 동의하였거나(본인이 동의하였더라도 가족 또는 유족이 거부하는 경우는 제외), 생전에 본인이 동의 또는 반대한 사실이 확인되지 아니한 경우로서 가족 또는 유족이 동의한 경우에만 장기 등의 적출·이식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제12조는 본인이 서명한 문서에 의한 동의 또는 민법의 유언에 관한 규정에 따른 유언의 방식으로 한 동의만을 동의로서 인정하고 있다. 뼈·피부·혈관·인대 등의 채취에 관한 ‘인체조직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서도 마찬가지이다(제7조, 제8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법률조항은 본인이 자신의 시체의 인수자가 없는 경우 생전에 본인의 시체가 해부용으로 제공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사표시를 명시적으로 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지 않아, 생전의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본인의 시체가 해부용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체해부법 제4조 제1항 제1호는 “시체를 해부하려면 그 유족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할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시체의 해부에 관하여 민법 제1060조에 따른 유언이 있을 때”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시체의 해부에 대해 생전에 본인이 민법 제1060조에 따른 유언에 의하여 동의한 때에는 별도로 유족의 승낙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 뿐, 생전에 본인이 민법에 따른 유언으로 반대하는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상의 사정들을 종합하면 보면, 본인의 시체가 해부용으로 제공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사표시를 명시적으로 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여 본인이 반대하면 그의 시체를 해부용으로 제공할 수 없도록 하든지, 또는 아예 인수자가 없는 시체를 해부용으로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이 사건 법률조항은 그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다른 방안이 있음에도 인수자가 없는 시체를 생전의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해부용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된다. (3) 법익 균형성 이 사건 법률조항이 추구하는 공익이 해부용 시체의 공급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국민 보건을 향상시키고 의학의 교육 및 연구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후 자신의 시체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해부용으로 제공됨으로써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사익이 그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법익 균형성 원칙에도 위반된다. (4) 소결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청구인의 시체의 처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5.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에 위반되므로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판관 박한철(재판장)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