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결정
청구인정○영 (대리인 법무법인 ○률담당변호사 ○○○)
주 문
피청구인이 2010. 11. 22. 부산지방검찰청 2010년 형제81718호 사건에서 청구인에 대하여 한 기소유예처분은 청구인의 평등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이 유
1. 사건의 개요
가. 박○석은 2010. 2. 16. ○○ 오토론(이하 ‘대부업체’라 한다. 위 대부업체의 대표는 박○령이다.)으로부터 500만 원을 이자 월 4%, 변제기 2011. 2. 15.로 정하여 차용하면서 위 박○석 소유의 시가 약 900만 원 상당의 29누○○○○ 쏘렌토 승용차에 대하여 채권자 박○령, 채무자 박○석, 채권최고액 750만 원으로 하는 저당권을 설정해 주었다. 또한 박○석은 이와 같이 승용차를 담보로 제공함과 동시에 위 대부업체에게 위 승용차의 양도행위 위임장 및 ‘파산신청 등 채권자의 채권보전에 위험을 초래할 때는 채권자가 교부 받은 보조키로 위 승용차를 인수하여도 아무런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동의서를 작성하여주고 위 승용차의 보조키를 교부하였다.
나. 그런데 2010. 7. 2. 박○석이 위 승용차를 청구외 오○건에게 양도하자, 대부업체는 채권회수 직원인 청구인에게 위 보조키를 교부하면서 위 승용차의 회수를 지시하였고, 청구인은 박○석이 작성·교부한 위 동의서에 근거하여 2010. 10. 5. 22:35경 위 박○석의 집 앞 노상에 주차되어 있던 위 승용차를 운전하여 갔다.
다. 박○석은 청구인을 절도혐의로 신고하였고, 피청구인은 2010. 11. 22. 절도 혐의는 인정되나 정상에 참작할 사정이 있다는 이유로 청구인에 대하여 기소유예처분(부산지방검찰청 2010년 형제81718호)을 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2010. 12. 16. 혐의없음을 주장하며 위 기소유예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청구인의 주장요지 및 피청구인의 답변요지
가. 청구인의 주장요지
박○석이 대부업체에게 위 승용차를 담보로 양도하면서 ‘박○석에 대한 채권보전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대부업체에서 위 승용차를 인수해도 좋다.’는 취지의 동의서를 작성하고 보조키를 교부하였으며, 청구인은 이러한 약정에 따라 위 보조키를 이용하여 위 승용차를 가지고 간 것이므로 청구인에게 절도의 고의가 없다. 또한 박○석은 양도담보로 제공한 위 승용차를 채권자인 대부업체와 의논도 없이 제3자에게 소유권을 이전했기 때문에 대부업체로서는 긴급히 차를 가져오지 아니하면 채권회수가 불가능해 질 것 같아 취거해 온 것이니 이는 정당행위에 해당된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요지
비록 약정에 기한 인도청구권 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취거 당시에 점유 이전에 관한 점유자의 명시적·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점유를 배제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도죄는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청구인이 박○석의 명시적·묵시적 동의 혹은 박○석에 대한 최소한의 통지절차도 없이 임의로 위 승용차를 가지고 갔다면 이는 절취행위에 해당되고 불법영득의사도 인정된다.
3. 판 단
가. 사건의 쟁점
박○석은 대부업체에게 채권보전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위 승용차를 임의로 인수해도 좋다는 동의서(헌법소원심판기록 15면) 등을 미리 작성·교부 하였는바, 이러한 동의서에 근거하여 위 승용차를 가지고 간 청구인에게 고의 내지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문제된다. 또한 박○석에 의한 채권침해 행위가 선행됨에 따라 청구인이 긴급한 채권회수의 필요에서 이루어진 위 승용차 취거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될 여지는 없는지 등도 문제된다.
나. 청구인에게 절도죄가 인정되는지 여부
(1) 기록에 의하면 청구인은 대부업체로부터 500만원을 차용하면서 시가 900만 원 상당의 위 승용차에 채권가액 750만 원의 저당권을 설정(헌법소원심판기록 14면)하였는데, 이는 위 승용차의 가치(價値) 대부분을 채권보전을 위해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고, 동시에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위 승용차가 박○석에 대한 채권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담보수단이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동산의 경우 부동산과는 달리 그 특성상 소유자가 변경되면 그 보관 및 사용방법 등이 함께 변경됨으로서 최초 예상되었던 동산의 담보가치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고, 변경된 소유자가 동산 담보물을 은닉하거나 멸실하면 채권자로서는 더 이상 담보권 실행이 불가능하여 채권을 보전할 방법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동산인 승용차를 담보로 제공받은 채권자로서는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채권보전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혹은 채무자가 과다한 채무관계로 인하여 파산신청 등을 한 때 대부업체에서 위 승용차를 인수해도 좋다는 취지의 동의서(헌법소원심판기록 15면) 및 자동차 양도행위 위임장(헌법소원심판기록 10면) 등을 작성하였던 것이고, 아울러 박○석은 위와 같은 취지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 위 승용차의 보조키까지 대부업체에게 교부하였다(수사기록 20, 28면).
그런데 박○석은 위와 같은 약정 하에 금원을 차용한 뒤 2010. 7.경 파산신청을 하였고, 이러한 파산신청을 함에 있어 무자력을 가장하기 위하여 허위로 친구인 오○건에게 위 승용차를 양도하였으며 위 승용차의 실제 사용은 박○석 본인이 하여 왔다(수사기록 21, 41면). 위 대부업체는 박○석이 담보물인 위 승용차를 양도한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급한 나머지 그 채권회수 직원인 청구인으로 하여금 이미 교부 받아 둔 보조키를 이용하여 이를 회수해 오도록 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박○석에 대한 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청구인이 위 동의서에 근거하여 위 승용차를 취거한 행위는 절도의 고의가 없다고 볼 여지가 높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당행위에 해당될 소지도 있다.
따라서 피청구인으로서는 ① 박○석이 대부업체에게 위 동의서를 작성하여 주고 보조키를 교부한 진정한 취지가 무엇이었는지, ② 박○석이 채권자에게 아무런 통지도 없이 동산인 위 승용차의 명의를 청구외 오○건에게 이전하게 된 경위가 무엇이며 그로 인하여 채권자의 채권이 침해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③ 매수인 오○건은 박○석이 파산신청과 관련하여 위 승용차를 양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위 승용차의 명의를 이전 받았는지, ④ 대부업체는 당시 채권보전의 위험성과 관련하여 어떠한 급박한 상태에 있었는지 등에 대하여 구체적 사실관계를 좀 더 수사한 후에 청구인의 혐의 유무를 판단하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만연히 박○석과 청구인에 대한 피상적인 진술기재만을 근거로 청구인에게 절도 피의사실을 인정하였는바, 이는 현저한 수사미진 내지 법리오해라고 볼 수밖에 없다.
(2) 또한 절도죄의 성립에 필요한 불법영득의 의사라 함은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 처분하려는 의사”를 말한다( 대법원 2000. 10. 13. 선고 2000도3655 판결 등). 청구인에게 위 승용차를 자신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 처분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살피건대,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청구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 내용만으로는 청구인이 위 승용차 회수 지시를 받았을 때 관계되는 상황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는지, 청구인이 위 승용차를 운전해 온 후 위 승용차를 어떻게 처리하려는 의사였는지(예컨대, 양도담보를 즉시 실행하려는 의사였는지, 위 승용차를 청구인이 직접 사용하려는 의사였는지 혹은 채무자인 박○석으로 하여금 위 승용차 명의를 다시 박○석 명의로 원상복구하게 하려는 의사에 불과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따라서 피청구인의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은 청구인의 불법영득의사 존부의 측면에 있어서도 중대한 수사미진을 초래하였다.
(3) 한편, 피청구인은 비록 약정에 기한 인도 등의 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취거 당시에 점유 이전에 관한 점유자의 명시적·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점유를 배제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도죄는 성립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 대법원 2001. 10. 26. 선고 2001도4546 판결, 대법원 2010. 2. 25. 선고 2009도5064 판결)을 원용하나, 이는 채권자가 차량을 회수한 다음 제3자에게 위 차량을 직접 매각한 사안이거나 채무자에 의한 차량의 허위양도가 전제되지 아니한 사건으로서 구체적 사실관계가 이 사건 심판청구와 달라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아니하다.
다. 소 결
피청구인은 박○석이 위 동의서를 작성하고 보조키를 교부한 진정한 취지, 박○석이 위 승용차를 이중양도함으로써 초래되는 채권침해의 가능성과 그 정도, 박○석이 청구외 오○건에게 위 승용차 명의를 이전하게 된 경위, 청구인의 위 승용차에 대한 불법영득의사의 존부, 청구인이 대부업체의 지시에 따라 위 승용차를 취거해온 경위와 그 후에 이를 처리하려 했던 방법 등에 대한 추가적인 수사 없이 경찰에서 이루어진 박○석 및 청구인에 대한 각 1회의 진술에 의존하여 만연히 청구인에게 절도 혐의를 인정하였는바, 이는 현저한 수사미진 내지 법리오해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은 위와 같이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어 자의적인 검찰권의 행사라 아니할 수 없고, 그로 말미암아 청구인의 기본권인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다.
4. 결 론
그렇다면 청구인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기로 하여,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재판관 이강국(재판장) 김종대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송두환 박한철 이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