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결정
사건2009헌마146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제2조제2호위헌확인등
청구인○○협의회 의장 박○직외 140인 (대리인 법무법인 ○진 담당변호사 ○○○○ ○○)
피청구인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이 유
1. 사건의 개요 및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청구인 ○○협의회는 재향군인회, 재향경우회, 성우회 등 총 115개 단체로 구성된 협의회이고, 청구인 이○승은 제주4·3사건 당시 우익청년단 단장이자 반탁전국학생총연맹위원장으로 활동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청구인 손○은 제주4·3사건 당시 서북청년회 조직부장으로 활동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건국회’의 회장, 청구인 이○식은 ‘자유언론수호국민포럼’의 대표, 청구인 정○욱은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의 감사인 사람이다. 청구인 강○훈, 백○주는 제주4·3사건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하였던 군경들이고, 청구인 8. 내지 141.은 제주4·3사건 당시 제주도에서 무장유격대에 대항하여 싸우다 사망한 군경 진압대의 유족들이다.
(2) 청구인들은 ① 피청구인인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이하 ‘제주4·3위원회’라 한다)가 2002. 11. 20.부터 2009. 3. 6.까지 수형자 및 무장유격대 가담자들을 포함하여 결정한 제주4·3사건 희생자 결정행위 및 ② 무장유격대 가담자들을 ‘희생자’ 개념에서 제외시키지 아니하는 한편 수형자를 ‘희생자’ 개념에 포함시킨 규정과 희생자에 대해 위령사업을 시행하고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규정 등을 두고 있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2호, 제3호, 제3조 제2항 제2호, 제3호, 제5호, 제7의3호, 제8조 제1호, 제2호, 제4호, 제5호, 제9조 제1항이 청구인들의 명예권, 평등권, 재판절차진술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2009. 3. 6.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피청구인이 2002. 11. 20.부터 2009. 3. 6.까지 결정한 제주4·3사건 희생자 결정(이하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이라 한다) 및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7. 5. 17. 법률 제8435호로 개정된 것, 이하 ‘법’이라 한다) 제2조 제2호, 제3호, 제3조 제2항 제2호, 제3호, 제5호, 제7의3호, 제8조 제1호, 제2호, 제4호, 제5호, 제9조 제1항(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이다.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 및 관련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7. 5. 17. 법률 제8435호로 개정된 것)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2. “희생자”라 함은 제주4·3사건으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후유장애가 남아 있는 자 또는 수형자로서 제3조 제2항 제2호의 규정에 따라 제주4·3사건의 희생자로 결정된 자를 말한다.
3. “유족”이라 함은 희생자의 배우자(사실상의 배우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 및 직계존비속을 말한다. 다만,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이 없는 경우에는 형제자매를 말하고,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에는 4촌 이내의 방계혈족으로서 희생자의 제사를 봉행하거나 분묘를 관리하는 사실상의 유족 중에서 제3조 제2항 제2호의 규정에 따라 유족으로 결정된 자를 말한다.
제3조(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② 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2. 희생자 및 유족의 심사·결정에 관한 사항
3. 희생자 및 유족의 명예회복에 관한 사항
5. 위령묘역 조성 및 위령탑 건립에 관한 사항
7의3. 희생자의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의 지급결정에 관한 사항
제8조(위령사업) 정부는 제주4·3사건 희생자를 위령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며 위령제례 등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다음 각호의 사업시행에 필요한 비용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원할 수 있다.
1. 위령묘역 조성
2. 위령탑 건립
4. 위령공원 조성
5. 기타 위령관련사업
제9조(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 ① 정부는 희생자 중 계속 치료를 요하거나 상시 개호 또는 보조장구의 사용이 필요한 자에게 치료와 개호 및 보조장구 구입에 소요되는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
[관련조항]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7. 5. 17. 법률 제8435호로 개정된 것) 제1조(목적) 이 법은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제주4·3사건”이라 함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제3조(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①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법에 의한 희생자 및 유족의 심사·결정 및 명예회복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소속하에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② 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1. 제주4·3사건 진상조사를 위한 국내외 관련 자료의 수집 및 분석에 관한 사항
2.~3. (생략)
4.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및 사료관 조성에 관한 사항
5. (생략)
6. 제주4·3사건에 관한 정부의 입장표명 등에 관한 건의사항
7. 이 법에서 정하고 있는 가족관계등록부의 작성에 관한 사항
7의2. 집단학살지, 암매장지 조사 및 유골의 발굴·수습 등에 관한 사항
7의3. (생략)
8. 기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항
제5조(불이익 처우금지) ① 누구든지 제주4·3사건과 관련하여 자유롭게 증언할 수 있다.
제8조(위령사업) 정부는 제주4·3사건 희생자를 위령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며 위령제례 등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다음 각호의 사업시행에 필요한 비용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원할 수 있다.
1.~2. (생략)
3. 4·3사료관 건립
4.~5. (생략)
제8조의2(제주4·3 관련 재단에의 출연) 정부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평화의 증진과 인권의 신장을 위하여 제주4·3사료관 및 평화공원의 운영·관리와 추가 진상조사 등 기타 필요한 사업을 수행할 목적으로 설립되는 재단에 기금을 출연할 수 있다.
제9조(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 ① (생략)
②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을 지급받을 권리는 양도 또는 담보로 제공하거나 압류할 수 없다.
③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의 지급범위와 금액의 산정 및 지급방법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12조(재심의) ① 희생자 및 유족으로 결정받고자 하는 자는 제3조의 규정에 따른 희생자 및 유족의 결정 또는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의 지급결정에 관하여 이의가 있는 때에는 위원회의 결정을 통지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위원회에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2. 청구인들의 주장
가. 이 사건 희생자 결정
피청구인은 제주4·3사건 과정에서의 무고한 양민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가려내어 이들을 희생자로 결정하여야 함에도 수형자 및 무장유격대 활동을 한 폭도들을 희생자로 결정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군경 및 그 유족 등 청구인들의 명예권, 평등권, 피해자의 권리 및 재판절차진술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적법절차 원칙에 위반하였다.
나. 법 제2조 제2호, 제3호, 제3조 제2항 제2호
법 제2조 제2호는 ‘희생자’의 개념을 규정하면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아니한 채 수형자를 포함시키고 무장유격대 가담자들을 배제하지 아니하고 있어, 당시 정당한 법집행을 한 군인·경찰 기타 관련자들 및 그 유족들의 명예권을 침해하고, 무장폭도와 군경을 같게 취급하여 평등권을 침해한다. 한편, 법 제2조 제3호의 ‘유족’은 희생자를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인바, 희생자 개념에 문제가 있는 이상 유족 개념 역시 동일한 기본권침해를 발생시킨다.
다. 법 제3조 제2항 제3호, 제5호, 제8조 제1호, 제2호, 제4호, 제5호
희생자에 수형자가 포함되고 무장유격대 가담자들이 배제되지 않는 이상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규정들은 필연적으로 반대 당사자의 명예에 대한 손상을 의미한다. 또한 가해자였던 무장유격대원들과 그들에 의하여 살해당한 피해자들을 동일한 장소에서 위령·추모하도록 하는 것은 피살자들과 그 후손인 청구인들의 명예를 훼손하며, 후손들로 하여금 가해자에 대한 위령·추모를 강제하는 것이 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
라. 법 제3조 제2항 제2호, 제7의3호, 제9조 제1항
위 조항들은 희생자 및 희생자에 대한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을 결정함에 있어 이해관계인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는 등 그 결정의 적법 여부를 다툴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있지 않아 결국 피해자의 권리 및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하며, 헌법상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된다.
3. 판 단
가. 이 사건 법률조항 부분
입법권자의 공권력의 행사로 만들어진 법률에 대하여 곧바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려면 우선 청구인 스스로가 당해 규정에 관련되어야 하고, 당해 규정에 의해 현재 기본권의 침해를 받아야 하며, 그 기본권침해도 법률에 따른 집행행위를 통하여서가 아니라 직접 당해 법률에 의하여 받아야 할 것을 요건으로 한다. 여기서 법률에 의하여 직접 기본권의 침해를 받는다고 함은 집행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법률 그 자체에 의하여 자유의 제한, 의무의 부과, 권리 또는 법적 지위의 박탈이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헌재 1998. 2. 27. 96헌마134, 판례집 10-1, 176, 182; 헌재 2001. 9. 27. 2000헌마238 등, 판례집 13-2, 383, 405).
헌법재판소는 2001. 9. 27.에 선고한 2000헌마238 등 사건에서, 제주4·3사건의 ‘희생자’는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등으로서 제주4·3위원회에 의하여 제주4·3사건의 희생자로 결정된 자’로 정의되는바, 법 제2조, 제3조, 제8조, 제9조 등은 ‘희생자’의 범위를 스스로 확정적으로 규율하지 않고 있으며 ‘희생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제주4·3위원회의 결정이라는 구체적 집행행위를 통하여만 밝혀지게 될 뿐 위 규정만으로는 직접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므로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부적법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헌재 2001. 9. 27. 2000헌마238·302(병합), 판례집 13-2, 383, 405-406 참조).
이 사건에 있어서도 위와 달리 판단하여야 할 사정변경이 있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그 결정을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청구인들은 2007. 1. 24. 법률 제8264호로 개정된 이 사건 법 제2조 제2호가 희생자의 개념에 ‘수형자’를 포함시키고 있는 점도 문제삼고 있으나, 희생자로 인정되는 수형자 역시 ‘제주4·3사건으로 인한 수형자로서 제주4·3위원회에 의하여 희생자로 결정된 자’만이 희생자가 된다고 할 것인바, 위와 같은 결론은 변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이 사건 법 제2조는 제주4·3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정의 규정이고, 제3조는 제주4·3위원회의 설치 및 그 기능에 관한 규정이며, 제8조와 제9조는 희생자에 대한 위령사업 시행과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 지급을 규정하여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지원을 선언한 규정일 뿐이다. 따라서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기본권 침해는 이 사건 법률조항 자체가 아니라 제주4·3위원회의 희생자 결정행위라는 구체적 집행행위를 통해 비로소 발생할 수 있게 되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청구는 직접성 결여로 부적법하다고 할 것이다.
나. 이 사건 희생자 결정 부분
청구인은 공권력작용에 대하여 자신이 스스로 법적으로 관련되어야 하는바, 원칙적으로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자만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제3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본권침해에 직접 관련되었다고 볼 수 없다. 즉, 공권력 작용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가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그 제3자의 기본권이 직접적·법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는 경우에만 자기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고, 단지 간접적·사실적 또는 경제적인 이해관계로만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는 자기관련성이 부인된다( 헌재 1992. 9. 4. 92헌마175, 판례집 4, 579, 580; 헌재 1997. 3. 27. 94헌마277, 판례집 9-1, 404, 409). 이 때 제3자의 자기관련성 판단은 입법의 목적, 실질적인 규율대상, 법규정에서의 제한이나 금지가 제3자에게 미치는 효과나 진지성의 정도 및 규범의 직접적인 수규자에 의한 헌법소원제기의 기대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헌재 1997. 9. 25. 96헌마133, 판례집 9-2, 410, 416-417).
그런데, 이 사건 희생자 결정에 대한 청구인들의 지위에 관해 보자면, 청구인들은 시민단체 구성원인 일반국민, 제주4·3사건 진압작전에 직접 참가하였던 군인, 그리고 제주4·3사건 진압작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자의 유족 등인바, 청구인들 중 어느 누구도 이 법이 규정하는 희생자에 해당하지 않으며 희생자 신고를 한 바도 없어 청구인들은 모두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청구인들이 이 사건 희생자 결정에 대해 명예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자기관련성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가 문제된다.
헌법 제10조로부터 도출되는 일반적 인격권에는 개인의 명예에 관한 권리도 포함되는바, 이때 ‘명예’는 사람이나 그 인격에 대한 ‘사회적 평가’, 즉 객관적·외부적 가치평가를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주관적·내면적인 명예감정은 법적으로 보호받는 명예에 포함된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헌법이 인격권으로 보호하는 명예의 개념을 사회적·외부적 징표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내심의 명예감정까지 명예에 포함되어 모든 주관적 명예감정의 손상이 법적 분쟁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관적·내면적·정신적 사항은 객관성과 구체성이 미약한 것이므로 법적인 개념이나 이익으로 파악하는 데는 대단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 헌재 2005. 10. 27. 2002헌마425, 판례집 17-2, 311, 319-320 참조).
위와 같은 청구인들의 인격에 대한 ‘사회적 평가’, 즉 객관적·외부적 가치평가가 이 사건 희생자 결정으로 말미암아 훼손되었는지 여부에 관해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이 근거하고 있는 제주4·3특별법의 제정경위와 목적, 내용 및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이 청구인들에게 미치는 실질적 효과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이 법의 제정경위에 관해 살펴보도록 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자유당 정권이 몰락한 1960. 4. 19. 이전까지 제주4·3사건은 남로당에 의하여 주도된 공산반란으로 취급되다가, 1960. 5. 23. 국회가 ‘양민학살진상조사단’을 구성하여 제주도를 방문함으로써 제주4·3사건의 진상에 대한 첫 조사활동이 태동하였다. 그러나 1961. 5. 16. 군사정변에 의하여 다시 그 활동이 중지되고 이후 제주4·3사건에 대한 논의는 일체 금기시되었다. 그러다가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이 선거공약으로 제시되면서 제주4·3사건에 대한 논의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1993년 제주도의회와 국회가 진상을 밝히려는 시도를 재개하여 마침내 1999. 12. 16. 국회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헌재 2001. 9. 27. 2000헌마238, 판례집 13-2, 383, 398-399 참조).
한편, 이 법의 제안설명, 목적, 제정경위 등을 종합하면, 이 법은 제주4·3사건이 발생한지 50여 년이 경과하는 동안 그 원인과 억울한 희생자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전개되어 왔음에도 국가차원에서의 진상규명이 없었고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조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는 반성에서, 제주4·3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한 뒤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려는 목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헌재 2001. 9. 27. 2000헌마238, 판례집 13-2, 383, 399-400 참조).
요컨대, 이 법의 제정경위와 목적은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제주4·3사건과 관련한 희생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켜 줌으로써 인권신장 및 민주발전 그리고 국민화합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고, 그에 근거하고 있는 이 사건 희생자 결정에서 청구인들과 같은 진압 군경이나 그 유족들에 대해 역사적 가해자의 낙인을 찍는 등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나 내용은 찾을 수 없다.
나아가 위와 같은 목적에 따라 이 법은 제주4·3위원회의 희생자 결정을 통해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시혜적 조치를 베풀도록 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희생자에 대한 위령사업으로, 그것은 희생자를 위령하고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위령묘역을 조성하고, 위령탑을 건립하며, 위령공원을 조성하는 등의 사업을 그 내용으로 한다( 법 제8조). 다음으로, 이 법 및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은 희생자 중 치료를 요하거나 개호를 필요로 하는 자에 대해 의료지원금이나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는데( 법 제9조), 이는 제주4·3사건 과정에서 희생자들이 입은 장애 및 질병에 대한 사회보장적 급부로서, 그 금액은 최소한에 그치고 있다.
결국, 이 법은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제주4·3사건의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고( 법 제1조), 구체적으로는 희생자 결정으로써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법 제3조), 위령사업 등을 통해 희생자를 위령하며( 법 제8조), 희생자들에 대해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법 제9조)의 최소한의 시혜적 조치를 베풀고 있을 뿐이므로,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이 청구인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명예가 훼손되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이 법과 이 사건 희생자 결정에 의해 청구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생각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명예감정’에 관련된 것으로서 그러한 명예감정은 헌법이 보호하는 명예권이나 인격권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 및 그에 근거한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의 목적과 내용, 그리고 그 실질적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은 주관적·내면적 명예감정이 아닌 청구인들의 인격에 대한 사회적 평가, 즉 객관적·외부적 가치평가로서의 법적으로 보호받는 명예를 훼손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청구인들은 이 사건에서 간접적·사실적인 이해관계로만 관련되어 있다고 할 것이어서 청구인들에게는 기본권침해의 자기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다. 그 밖의 청구인들의 주장에 관한 판단
청구인들은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은 공산무장폭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그들에 의해 희생당한 청구인들의 평화적 생존권과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등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는바, 이에 대해 살펴본다.
(1) 우선, 평화적 생존권은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기본권으로서 그것을 특별히 새롭게 인정할 필요성이 있다거나 그 권리 내용이 명확하여 구체적 권리로서의 실질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이라 할 수 없다( 헌재 2009. 5. 28. 2007헌마369, 판례집 21-1하, 769, 775-777 참조). 따라서 청구인들의 평화적 생존권 침해에 대한 주장은 이유 없다.
(2) 한편, 청구인들의 재판절차진술권 침해에 대한 주장을 선해하자면, 그것은 청구인들 스스로를 무장유격대 적극 가담자와 같은 공산폭도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로 보아 형사피해자로서의 재판절차진술권을 가진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은 제주4·3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제주도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실을 확인하여 그들을 희생자로 결정하는 것일 뿐이고, 일부 희생자들이 범죄자로 간주되어 그들에 대한 형사재판이 장래 예정되어 있다거나 그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청구인들의 형사피해자로서의 재판절차진술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인정되지 아니한다.
(3) 다음으로, 청구인들은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이 공산폭도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려는 청구인들을 동일시하여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부담을 부과하는 소위 ‘침해적 법률’의 경우에는 규범의 수범자가 당사자로서 자신의 기본권침해를 주장하게 되지만, ‘수혜적 법률’의 경우에는 반대로 수혜범위에서 제외된 자가 그 법률에 의하여 평등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당사자에 해당되고, 당해 법률에 대한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라 수혜집단과의 관계에서 평등권침해 상태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면 기본권 침해성이 인정된다( 헌재 2002. 12. 18. 2001헌마546, 판례집 14-2, 890, 896).
살피건대, 청구인들의 주장은 수형자 및 무장유격대 적극 가담자에게까지 이 법에 의한 혜택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일 뿐이고, 자신들도 이 법의 수혜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희생자들과 청구인들이 경쟁관계에 있어 희생자들에 대한 혜택부여가 동시에 청구인들에 대한 불이익을 의미하는 관계에 놓여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사건 희생자 결정으로 인한 평등권의 침해가능성은 없다 할 것이다.
(4) 끝으로, 청구인들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적법절차원칙 위반을 주장하고 있으나, 헌법재판소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헌법의 기본원리 혹은 헌법상 보장된 제도의 본질이 훼손되었다고 하여 그 점만으로 바로 국민의 기본권이 현실적으로 침해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여 헌법소원을 각하하여 왔는바( 헌재 1995. 2. 23. 90헌마125, 판례집 7-1, 238, 243; 헌재 1998. 10. 29. 96헌마186, 판례집 10-2, 600, 606 참조), 이 사건에서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헌법의 기본원리와 헌법상 보장된 제도로부터 구체적인 기본권을 직접 도출하기는 어려우므로, 그 위반을 이유로 하는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고 할 것이다.
4.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므로 이를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에 대하여는 재판관 목영준의 아래 5.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5. 재판관 목영준의 일부 반대의견
나는, 다수의견과 달리, 이 사건 청구인들 중 ‘제주4·3사건 진압작전에 직접 참가하였던 군인’ 및 ‘제주4·3사건 진압작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자의 유족’에게는 이 사건 희생자결정에 대한 자기관련성이 인정되어 본안 판단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다음과 같은 반대의견을 밝힌다.
가. 기본권침해의 자기관련성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의 헌법소원을 제기하기 위하여는 공권력의 행사에 대하여 자신이 스스로 법적으로 관련되어야 하므로, 공권력 작용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는 자신의 기본권이 직접적·법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는 경우에만 자기관련성이 인정되는바, 이 때 제3자의 자기관련성 판단은 입법의 목적, 실질적인 규율대상, 법규정에서의 제한이나 금지가 제3자에게 미치는 효과나 진지성의 정도 및 규범의 직접적인 수규자에 의한 헌법소원제기의 기대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헌재 1997. 9. 25. 96헌마133, 판례집 9-2, 410, 416-417).
나. 청구인들의 제3자성
이 사건 청구인들은, 첫째, 시민단체 및 시민단체 구성원 등 일반국민(청구인 ○○협의회, 이○승, 손○, 이○식, 정○욱), 둘째, 제주4·3사건 진압작전에 직접 참가하였던 군인(청구인 강○훈, 백○주), 셋째, 제주4·3사건 진압작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자의 유족 등 세 유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바,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의 직접 대상자는 제주4·3위원회에 의하여 위 사건의 희생자로 결정된 자이므로 위 청구인들은 공권력 작용의 상대방이 아닌 제3자에 해당한다.
우선, 첫째 유형의 청구인들은 제주4·3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고 볼 수 없는 일반 국민에 불과하므로 이 사건 희생자 결정에 대하여 자기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둘째 및 셋째 유형의 청구인들(이하 ‘위 청구인들’이라고 한다)은 제주4·3사건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들에게는 이 사건 희생자 결정에 의한 명예권 침해에 대하여 자기관련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
다. 자기관련성 여부
헌법 제10조로부터 도출되는 일반적 인격권에는 개인의 명예에 관한 권리도 포함되고, 여기서 보호의 대상이 되는 ‘명예’는 사람이나 그 인격에 대한 사회적 평가, 즉 객관적·외부적 가치평가를 가리키는 것이지 주관적 명예감정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닌바, 다수의견은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이 위 청구인들의 명예권을 침해하는 목적, 내용 및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그들의 객관적·외부적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기관련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사람이나 그 인격에 대한 사회적·객관적 가치평가’라는 명예의 개념을 지나치게 도식화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제주4·3사건”이란 “ ……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제주4·3사건 특별법 제2조 제1호)을, “희생자”란 “제주4·3사건으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후유장애가 남아 있는 자 또는 수형자로서 …… 희생자로 결정된 자”( 제2조 제2호)를 말하므로, 특정인들을 제주4·3사건의 희생자로 결정하는 이 사건 희생자 결정에 의하여 제주4·3사건의 진압 군경들은 논리필연적으로 해당 특정인들의 희생을 초래한 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치열하게 대립했던 당사자 일방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일면적일 수 없고 타방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일방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타방의 주관적 명예감정에만 관련된다는 다수의견의 논거는 명예의 본질적 성격을 간과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이 사건 희생자 결정에 의해 내려진 희생자들에 대한 법적 평가는 당연히 진압 군경들에 대한 종전의 사회적 평가, 즉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하여 제주4·3사건을 진압한 자’라는 객관적·외부적 평가와 상반되는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되고, 나아가 위 진압 군경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사자(死者)와의 관계를 통하여 스스로의 인격상을 형성하고 명예를 지켜온 그들의 유족에게도 미치게 된다.
이처럼 이 사건 희생자 결정으로 인하여 당시 진압 군경이거나 그 유족들인 위 청구인들의 객관적 명예가 심대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는 점 및 위 결정의 직접 상대방인 희생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위 청구인들이 이 사건 희생자 결정의 직접 상대방이 아니라 하여도 위 결정의 당부를 다툴 자기관련성이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에 대한 본안에 들어가 구체적으로 각각의 희생자 결정으로 인하여 해당 청구인들의 명예가 실제로 침해받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라. 소결
그렇다면 이 사건 청구인들 중 ‘제주4·3사건 진압작전에 직접 참가하였던 군인’ 및 ‘제주4·3사건 진압작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자의 유족’에 대해서는 이 사건 희생자 결정에 대한 자기관련성이 인정되고, 따라서 위 청구인들의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는 적법하다고 할 것이다.재판관 이강국(재판장) 이공현 조대현 김희옥 김종대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송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