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결정
사건2007헌가23 일제강점하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제2조제9호위헌제청
제청신청인조○행 (대리인 법무법인 한길 담당변호사 김형준)
주 문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6. 4. 28. 법률 제7937호로 개정된 것) 제2조 제9호 중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제청신청인은 망 조○태(1853. 6. 6.~1933. 12. 17., 이하 ‘조○태’라고 한다)의 증손자이다. 조○태는 1908년경부터 1925년경까지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위원 및 감사를, 1918년경 조선식산은행 설립위원을, 1921. 9.경부터 1924. 12.경까지 산업조사위원회 위원을 각 역임한 후 1928년경부터 1933년경까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하였다.
(2)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반민규명법’이라 한다)에 따라 설치된 친일반민족행위반민규명위원회(이하 ‘반민규명위원회’라 한다)는 반민규명법에 따른 조사를 거쳐 2006. 9. 11. 위와 같은 조○태의 행위가 반민규명법 제2조 제9호 등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하였다(이하 ‘이 사건 결정’이라 한다).
(3) 제청신청인은 이 사건 결정에 대하여 2006. 11. 15. 반민규명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2006. 11. 27. 기각되자, 2006. 12. 8. 서울행정법원에 반민규명위원회를 상대로 이 사건 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2007. 6. 5. 이 사건 결정의 근거조항 중 일부인 반민규명법 제2조 제9호가 헌법 제10조, 제11조 제1, 2항, 제12조 제3항 등에 위배되어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위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며, 위 법원은 2007. 10. 31. 이를 받아들여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제청법원은 반민규명법 제2조 제9호 전체를 위헌제청하였으나, 그 제청이유는 반민규명법 제2조 제9호 중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 부분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므로,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을 반민규명법 제2조 제9호 중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 부분으로 한정한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반민규명법 제2조 제9호 중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 부분(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인바, 그 내용(아래 밑줄 친 부분) 및 관련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6. 4. 28. 법률 제7937호로 개정된 것)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친일반민족행위”라 함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행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9.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
[관련조항]
[별지] 기재와 같다.
2. 제청법원의 위헌제청이유 및 이해관계인의 의견
가. 제청법원의 제청이유 요지
반민규명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 있으면 조사대상자의 일반적 인격권이 제한받게 되므로, 이러한 권리와 자유의 제한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규정한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는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것을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는바, 일제의 총독정치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설치된 중추원의 간부에 해당하는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것을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한 것 자체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려우나, 한편 중추원 및 그 참의의 성격이 시대에 따라 달랐던 측면이 있고, 그 참의의 수도 적지 않으며, 참의 중에서도 대우의 구분이 있었고, 각 권한 및 실제 활동 양상도 시대별로 달랐던 점, 그 재직기간의 장단 및 기타 특별한 사정이 있을 수 있는 점, 다른 친일반민족행위의 정의규정에는 ‘적극 협력’, ‘중심적으로 수행’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거나 그 자체로 가치판단이 내포된 행위들로 규정되어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 사건 법률조항이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사실을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면서 그에 대한 활동의 태양이나 어떠한 예외사유도 규정하지 않은 것은 피해의 최소성이나 법익의 균형성의 측면에서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 반민규명위원회 위원장의 의견요지
(1) 반민규명법 제19조 제1항에서는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 내용이 중대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의결로써 조사대상자를 선정하여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아무런 예외사유를 규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사건 법률조항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을 함에 있어서는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의 원칙에 따라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제청법원의 위헌제청은 결국 법률조항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법률의 해석에 대한 것이어서 부적법하다. 또한 조사대상자인 조○태의 경우에는 제청법원이 위헌사유로 밝힌 예외적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가 당해 사건 재판의 결론이나 주문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재판의 전제성을 결여하여 부적법하다.
(2)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 있더라도 이미 사망한 조사대상자가 인격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청법원이 들고 있는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사유는 굳이 예외조항을 두지 않는다 하더라도 체계적, 합리적 법해석과 적용을 통하여 예외조항을 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고 실제 반민규명위원회의 실무운용 또한 그러하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에 어떠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할 수 없다.
(3) 더욱이 중추원은 친일세력의 집합소 내지 친일세력이 나아갈 수 있는 최종 귀속기관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것이고, 제헌국회 당시 제정된 구 반민족행위처벌법(1948. 9. 22. 법률 제3호로 제정된 것)에서도 중추원 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였던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5년 이하의 공민권 정지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몰수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던 점과 우리 헌법의 정신 등을 감안하면, 중추원 참의를 지낸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한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3. 반민규명법의 제·개정 경과 및 중추원의 지위와 역할
가. 반민규명법의 제·개정 경과 및 주요 내용
반민규명법은 정부차원에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조사한 후 그 결과를 사료로 남겨둠으로써 왜곡된 역사와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이를 후세의 교훈으로 삼으려는 목적하에 발의되어, 2004. 3. 22. 법률 제7203호로 제정, 공포되었다. 그런데 위 법률의 통과과정에서 반민규명법이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반민규명법의 시행일 이전에 여야로부터 각기 개정안이 발의되고 공청회 및 토론회 등을 거쳐 최종개정안이 마련되었고, 2004. 12. 29. 국회 본회의에서 수정가결되어 2005. 1. 27. 법률 제7361호로 공포되었으며, 이에 근거하여 2005. 5. 31. 반민규명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반민규명법은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는 행위를 제1호부터 제20호까지 열거하고 있고( 제2조),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규명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으로 반민규명위원회를 설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3조). 반민규명위원회는 조사대상자를 선정하고 필요한 조사를 거쳐 조사대상자의 친일반민족행위 여부를 결정하고( 제4조, 제19조 등), 위원회 활동을 조사보고서로 작성하여 매년 대통령 및 국회에 보고하며( 제25조),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사료를 편찬하고( 제26조), 위 조사보고서와 사료를 공개하여야 한다( 제27조).
나.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지위 및 역할
(1) 중추원은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정2품 이상의 실직(實職)이 없는 인사들을 우대하기 위하여 설치된 기구로서, 1895년 및 1898년 관제가 개정되면서 점차 권한이 강화되어 법률의 제·개정에 관한 사항 등 국가중요사안에 관하여 심사의정(審査議定)하는 기구로 변화되었다.
(2) 조선총독부는 1910. 10. 1. 시행된 조선총독부 중추원관제(1910. 9. 30. 칙령 제355호)에 의하여 조선총독부 중추원을 설치하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은 의장(정무총감) 1인, 부의장 1인{친임(親任)대우}, 고문 15인{칙임(勅任)대우}, 찬의 20인(칙임대우), 부찬의 35인{주임(奏任)대우}, 서기관장, 서기관, 통역관 등으로 구성되었고, 고문만이 의결권이 있었다.
한편 3·1운동 이후 일제의 무단통치가 민족분열정책을 기조로 하는 문화통치로 전환되면서 조선총독부 중추원관제가 개정되었는데, ‘조선총독부 중추원관제 중 개정 건(1921. 4. 26. 칙령 제168호)’에 의하여 개정된 주요 내용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의 정원을 5인(친임대우)으로 축소하고, 찬의와 부찬의를 합쳐 참의(參議)로 개칭하여 칙임대우·주임대우로 구분하며, 인원을 65명으로 조정하고, 고문에게만 주어져 있던 의결권을 참의에게도 확대 부여하며, 임기도 3년으로 정하여 중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3) 이 사건 법률조항이 정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는 관제개정 전의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찬의와 부찬의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해석되고, 반민규명위원회의 실무운용례도 이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1910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설치될 때 임명된 찬의는 20명, 부찬의는 32명이었는데, 그 후 찬의는 11명, 부찬의는 14명이 추가로 임명되어 1921년 관제개정 때까지 찬의에 임명된 사람은 모두 31명, 부찬의에 임명된 사람은 46명이었다. 1921년 중추원 관제의 개정 이후에는 일제는 3년에 한 번씩 참의를 임명하였다.
(4)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기능 및 역할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였지만, 기본활동은 총독의 자문기구로서 총독이 부의한 안건에 대해 심의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었다. 즉, 조선총독부 중추원은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과 총독통치에 기여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일제의 조선침략을 합리화하고 식민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각종 조사·편찬 작업에 힘썼던 반민족적 성격을 지닌다. 특히, 1937년경 전시체제로 돌입한 이후에는 일제의 대륙침략정책에 동조하고 선전하는 기구로도 활용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4.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여부
가. 제한되는 기본권
헌법 제10조로부터 도출되는 일반적 인격권에는 개인의 명예에 관한 권리도 포함되는바( 헌재 1999. 6. 24. 97헌마265, 판례집 11-1, 768, 774; 헌재 2005. 10. 27. 2002헌마425, 판례집 17-2, 311, 319), 이 사건 법률조항에 근거하여 반민규명위원회의 조사대상자 선정 및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 이루어지면(이에 관하여 작성된 조사보고서 및 편찬된 사료는 일반에 공개된다), 조사대상자의 사회적 평가가 침해되어 헌법 제10조에서 유래하는 일반적 인격권이 제한받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사건 결정의 조사대상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조사대상자는 이미 사망하였을 것이 분명하나, 조사대상자가 사자(死者)의 경우에도 인격적 가치에 대한 중대한 왜곡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고, 사자(死者)에 대한 사회적 명예와 평가의 훼손은 사자(死者)와의 관계를 통하여 스스로의 인격상을 형성하고 명예를 지켜온 그들의 후손의 인격권, 즉 유족의 명예 또는 유족의 사자(死者)에 대한 경애추모의 정을 침해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조사대상자의 사회적 평가와 아울러 그 유족의 헌법상 보장된 인격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이하 기본권을 제한받는 주체인 조사대상자 또는 그 유족을 ‘조사대상자 등’이라고만 표시한다).
나. 과잉금지원칙 위배 여부
(1) 목적의 정당성
이 사건 법률조항을 비롯한 반민규명법의 입법목적은, 헌법 전문에서 천명된 3·1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의 의미를 되살려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 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를 위하여 행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함에 있는바( 반민규명법 제1조 참조), 이러한 입법목적은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공공복리를 위한 것으로서 정당성이 인정된다.
(2) 수단의 적합성
이 사건 법률조항에 근거하여 반민규명위원회는 조사대상자의 행위가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보고서 작성 및 사료편찬 작업을 통하여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에까지 나갈 수 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일제의 식민지정책을 정당화, 합리화하는 기능을 수행하여 왔다고 평가되는 점에 비추어, 이 사건 법률조항은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기 위한 입법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적합한 수단이라고 할 것이다.
(3) 침해의 최소성
(가) 과거사 청산의 대의와 긴절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60여년 내지 100여년전에 있었던 친일반민족행위를 지금에 와서 규명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적 평가라는 가치 판단의 문제가 개입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의 상충 문제도 복합적으로 제기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이 일은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소통과 사회적 토론을 거쳐 이루어낼 수밖에 없다. 즉, 어떠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할 것인지 여부는 역사적 진실 및 민족적 정통성의 확인이라는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원칙적으로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가 역사학계를 비롯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역사의식과 도덕적 기준, 그에 대한 규범적 평가를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항이다.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률조항을 포함한 반민규명법은 여러 차례 개정안이 발의되어 수회의 공청회 및 토론회 등을 거친 후 국회에서 가결된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적 숙의과정 및 공론적 토대로부터 성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바, 이처럼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합의로 성립되었다고 한다면 헌법재판소로서는 원칙적으로 그 입법적 판단을 존중함이 옳다.
(나)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정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는, 앞서 본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지위 및 역할 등에 비추어 볼 때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제헌헌법 하에서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 제4조 제2호에서 ‘참의였던 자’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규정을 둔 것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자는 당연히 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반민규명법 제19조 제1항은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 내용이 중대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의결로써 조사대상자를 선정하여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반민규명위원회는 조사대상자가 비록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등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된 활동을 한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재직기간이 매우 짧다던가 민족진영을 위해 활동한 사실이 밝혀질 때에는 그 활동의 내용을 고려하여 조사대상자로 선정하지 아니하거나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있다고 하여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자가 곧바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조사를 받거나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반민규명위원회의 결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므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예외 없이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을 받는 것도 아니다.
(다) 또한, 반민규명법은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조사를 위하여 조사대상자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에 참여 또는 지원한 사실이 있는 때에는 이러한 사실을 함께 조사하도록 하고( 제20조), 조사대상자의 보호를 위하여 조사내용의 공개금지규정을 두는 한편 반민규명위원회에 대하여 조사대상자의 사생활 및 명예 등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제23조 등), 조사대상자 등에게 의견진술권 및 이의신청권을 부여하고 있는 등( 제19조, 제24조, 제28조 등), 조사대상자 등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나아가 반민규명법은 이 사건 법률조항에 근거한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 있더라도 그 조사활동에 부수하여 작성된 조사보고서 및 편찬된 사료를 공개하는 것 이외에 조사대상자 등에 대한 어떠한 불이익도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고 있는바, 이는 처벌 내지 공민권 제한 등을 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 등 여타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입법에 비하여 기본권침해를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라) 소결론
이 사건 법률조항은 조사대상자 등의 기본권제한을 최소화한 것으로 보이고, 이보다 덜 제한적인 방법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피해최소성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4) 법익의 균형성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이에 대한 사료를 남기고 이를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자료로 삼아 후세에게 역사의 교훈을 남기는 한편,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될 수 있도록 공동체의 윤리를 정립하고자 하는 공익의 중대성은 막대하다. 이에 반해서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인해 제한되는 조사대상자 등의 인격권은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조사보고서와 사료가 공개됨으로 인한 것에 불과하여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공익과 사익 간의 균형성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법익균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5.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아래 6.과 같은 재판관 조대현의 반대의견을 제외한 나머지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6. 재판관 조대현의 반대의견
반민규명법은 제2조에서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1904. 2. 8.)부터 1945. 8. 15.까지 행한 친일반민족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그 행위들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 및 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행위들이므로 반민족행위로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반민규명법이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조사하여 공개하도록 규정한 것은 국민들의 여망(輿望)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반민규명법은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지만, 직접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내용은 대통령 소속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 하여금 친일반민족행위를 조사하여 사료를 편찬하고 조사보고서로 작성하여 공개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되어 공개되는 사람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시(公示)된다. 그것은 개인의 비행(非行)에 대하여 공식적(公式的)으로 명예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명예형(名譽刑)으로 처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죄형법정주의를 규정하고 소급처벌과 이중처벌을 금지하고 있다. 범죄의 요건과 형벌의 내용은 미리 법률로 정해져야 하고(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 헌법 제13조 제1항).
국가기관이 60년 이상 지난 과거의 행적을 조사하여 친일반민족행위라고 낙인찍는 것은 그 행위자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명예형벌이라고 할 수 있다.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태형(笞刑)이나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는 참형(斬刑)이 형법상 형벌로 규정되지 않았지만 헌법 제13조 제1항의 “처벌”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하듯이, 사람의 명예를 공식적으로 침해하는 명예형도 형법상 형벌로 규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헌법 제13조 제1항의 “처벌”에 해당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명분과 명예를 매우 소중한 것으로 여겨 왔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명예형을 태형이나 참형보다 더 고통스러운 형벌로 인식할 수도 있다. 죽은 사람은 이름과 명예만 가질 뿐이므로, 죽은 사람의 명예를 공식적으로 더럽히는 것은 그의 전부를 박탈하는 셈으로 된다. 따라서 국가권력에 의하여 개인의 명예를 공식적으로 침해하는 것은 명예형으로 처벌하는 것으로서 헌법 제13조 제1항의 “처벌”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60년 이상 지난 과거의 친일반민족행위를 명예형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헌법 제13조 제1항의 적용범위에서 제외시키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헌법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은 헌법에 규정되어야 한다.
1948. 7. 17. 공포된 제헌헌법은 제23조에서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대하여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면서, 제101조에서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친일반민족행위를 소급입법에 의하여 처벌하기 위해서 제헌헌법 제23조의 예외를 허용하는 특별규정을 헌법 자체에서 마련했던 것이다.
제헌헌법 제101조에 따라 1948. 9. 22.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공포되었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일제 치하에서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들을 형사처벌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공직취임을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특별조사위원회와 특별재판부와 특별검찰부를 설치하여 일제 치하의 반민족행위자를 조사하여 처벌하였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은 1951. 2. 14. 법률 제176호로 폐지되었고, 제헌헌법 제101조도 1960. 6. 15. 헌법 제4호로 삭제되었다.
현행 헌법은 제13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면서, 제헌헌법 제101조와 같이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하여 예외를 허용하는 특별규정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민규명법은 1904. 2. 8.부터 1945. 8. 15.까지 사이에 행해진 친일반민족행위를 국가기관이 조사하여 공개하도록 규정하였다.
반민규명법은 예전의 반민족행위처벌법과 달리 친일반민족행위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고 형벌이나 재산몰수 또는 공직취임의 제한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아니하고,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조사하여 공개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국가권력에 의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결정하여 공개하는 것은 개인의 명예를 공식적으로 침해하는 명예형을 부과하는 것으로서 헌법 제13조 제1항의 “처벌”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헌법에 특별한 근거규정도 마련하지 아니한 채 60년 이상 지난 과거의 친일반민족행위를 국가기관이 나서서 조사하여 공개하는 것은 헌법 제13조 제1항[소급처벌 금지]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소급처벌에 해당된다고 보는 이상, 범죄소추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고 하여 헌법 제13조 제1항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제헌헌법 제101조에 따라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고도, 그 처벌이 미흡하다고 하여, 헌법에 특별한 근거규정도 없이 다시 친일반민족행위를 조사하여 공개하는 것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거듭 처벌하는 것이어서 헌법 제13조 제1항[이중처벌 금지]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반민규명법은 헌법 제13조 제1항에 위반되고 법치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므로 그 전부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하여 전부 실효시켜야 한다. 국민들의 여망에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헌법의 기본질서를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밝혀야 한다. 재판관 이강국(재판장) 이공현 조대현 김희옥 김종대 민형기 목영준 송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