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차량) 사안에서 피의자의 도주의사 내지 범의를 인정하기 어려운데도 도주의사 여부에 대하여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고 한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한 사례
재판요지
사고경위, 피해자의 피해상황, 사고 당시의 상황 등을 종합하여 볼 때, 피의자(청구인)가 피해자의 상해 사실을 인식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였다고 보기도 어렵고, 피해자의 상처도 하찮은 것으로서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볼 소지가 있는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이 청구인의 도주의사 여부에 대하여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고 사건을 기소유예처분한 것은 객관적으로 자의적인 것으로서 청구인의 평등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결정
사건
2001헌마670 기소유예처분취소
청구인
이○용 대리인 법무법인 ○서 담당변호사 ○○○
피청구인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검사
판결선고
2001. 12. 20.
주 문
피청구인이 2001. 8. 23.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2001형제28965호 사건에서 청구인 이○용에 대하여 한 기소유예처분은 청구인의 평등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
이 사건 기록과 위 지청 2001형제28965호 불기소사건 기록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가.청구인은 청구외 강○화로부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차량)으로 서울 서부경찰서에 신고되어 다음 피의사실로 인지되었다.
청구인은 2001. 6. 29. 11:00경 서울32마○○○○호 옵티마 승용차를 운전하여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소재 ○○부동산사무소 앞 노상을 출발하면서, 당시 청구인의 차 뒤쪽에는 다른 차량이 주차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 운전자로서는 후방을 잘 살피며 안전하게 출발하여 사고발생을 미리 막아야 할 업무상의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후진한 과실로, 마침 뒤차에 있던 피해자 강○화의 서울42다○○○○호 라노스 승용차 앞범퍼 부분을 청구인의 차 뒤범퍼 부분으로 들이받아, 그 충격으로 위 라노스 승용차에 탄 채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던 위 강○화로 하여금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경추부염좌 등의 상해를 입게 하고도 동인을 구호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도주한 것이다.
나.피청구인은 이 사건을 수사한 결과 2001. 8. 23. 기소유예의 불기소처분을 하였다. 청구인은 이 처분이 청구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였다며 2001. 9. 27.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판 단
가.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차량)의 일반적 구성요건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5조의3 제1항 소정의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0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때'라 함은 사고 운전자가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을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0조 제1항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기 이전에 사고현장을 이탈하여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에 대한 인식의 정도는 반드시 확정적임을 요하지 아니하고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하면 족한 것이다( 대법원 2001. 1. 5. 선고 2000도2563 판결).
한편 위 특가법위반죄는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사실을 인식하고 도주한 경우에 성립하는 고의범이다( 대법원 1999. 11. 12. 선고 99도3140 판결). 그런데 도주운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에게 사상의 결과가 발생하여야 하고, 생명·신체에 대한 단순한 위험에 그치거나 형법 제257조 제1항에 규정된 '상해'로 평가될 수 없을 정도의 극히 하찮은 상처로서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는 것이어서 그로 인하여 건강상태를 침해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위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2000. 2. 25. 선고 99도3910 판결).
나.이 사건의 경우 청구인의 도주의사 내지 범의를 인정하기가 어렵다.
우선 사고경위를 보면, 당시 상가옆 도로변에 차량들이 일렬로 주차해 있었는데 청구인차량과 피해자차량 간에는 40cm정도의 거리밖에 없었으므로(수사기록 60쪽), 청구인으로서는(운전경력은 5년 4개월) 차를 빼기 위하여 후진하다가 뒤차와 경미하게 부딪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피해자차량은 아무 이상 없으며 청구인차량 뒷범퍼에 번호판 팔각나사 자국이 났다(수사기록 23쪽).
피해자의 피해상황을 보면, 피해자(여, 31세)는 당시 차에서 이동전화로 통화 중이다가 청구인 차량에 의한 충격을 받고 차에서 나와 항의하며 목이 아프다고 말하였다. 피해자는 다음 날 경찰서에 신고하면서 경추부 염좌, 요추부 염좌, 좌견관절 염좌로 2주간의 가료를 요한다는 의사 구자성(대성병원)의 진단서를 제출하였는데, 동 의사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가 사고 당일 내원하였으며 목과 허리 그리고 좌측 어깨 부분에 통증을 호소하여 X-Ray 촬영을 한 바 골절이상 등은 없었고 피해자가 통증을 호소해 소염진통제와 약물을주사하고 어깨부분에 물리치료를 한 바 있으며, 그 날 이후에는 다시 내원한 바 없다"고 한다(수사기록 47쪽 참조). 한편 피해자는 "첫날 진료를 받으면서 치료를 받았고, 이튿날 진단서를 받으러 갔다가 또 치료를 받았으며, 그 이후로는 제가 몸살감기에 걸린 바람에 치료를 받으러 가지 못했습니다"고 진술하나(수사기록 61쪽), 위 의사의 진술에 의하면 그 이튿날도 치료를 받았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 검찰 조사 당시 피해자는 아무런 후유증이 없는 상태였다(수사기록 63쪽).
한편 사고 당시의 상황을 보면, 청구인은 위 ○○부동산사무소에 집판 돈 잔금을 받기 위하여 갔었으며 당시 그곳에 있던 법무사직원에게 등기이전서류를 건네주고 나오던 길이었는데, 현장에서 피해자와 옥신각신하자 그 법무사직원이 나와 반말로 피해자에게 "그만해, 우리 복덕방 손님이야"라고 하는 것을 보고 피해자와 그 법무사직원이 일행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부동산사무소에 모두 밝혀져 있는 상황이므로, 뭔 일 있으면 연락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그 자리를 떠난 것이라 볼 것이다(수사기록 57-8쪽 참조). 그 법무사직원은 사실 피해자의 아버지였으며 피해자는 그 법무사직원을 태워 가기 위하여 차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수사기록 38-9쪽).
이러한 여러 상황을 종합하여 위 대법원 판시와 대비시켜 보면, 청구인이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을 인식하였다"고 바로 단정하기는 어렵고, 피해자와 법무사직원이 일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이상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 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한 피해자의 상해 정도는 "하찮은 상처로서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는 것이어서 그로 인하여 건강상태를 침해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라고 볼 소지도 있다. 즉, 피해자가 받은 상처는 "굳이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정도"라고 판단되고 그와 같은 통증으로 인하여 "신체의 완전성이 손상되고 생활기능에 장애가 왔다거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었다고 보기 어려워" 이를 형법상 '상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위 대법원 2000. 2. 25. 선고 99도3910 판결 참조).
이 사건에서는, 청구인도 자인하고 있는 바, 청구인이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연락처를 피해자에게 명시적으로 남기지 않고 현장을 이탈한 잘못은 존재하나, 청구인은 그러한 차량 후진과정의 경미한 접촉이 피해자에게 아무런 상해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단정하였다고 인정되는 점, 청구인과 거래한 법무사직원과 피해자가 동행이었던 점을 청구인이 인식하였던 점, 피해자도 아버지의 만류 과정에서 청구인이 ○○부동산사무소에서 나온 고객임을 알았던 점 등을 고려하면, 청구인이 도주의사 내지 범의를 지니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사정이 위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이 청구인의 도주의사 여부에 대하여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고 이 사건을 기소유예처분한 것은 객관적으로 자의적인 것으로서 청구인의 평등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볼 것이다.
3. 결 론
그러므로 피청구인이 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은 이를 취소하기로 하여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