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 (주소 1 생략) 임야 147,967㎡(이하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1957. 1. 16. 피고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마쳐짐.
원고는 이 사건 부동산이 선정자들의 조부 또는 증조부인 망 소외 1이 1917. 10. 1. 사정받아 소유권을 취득한 후 상속인들을 거쳐 선정자들이 지분소유권을 취득한 재산임에도, 피고가 권원 없이 이 사건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으므로 원인 무효인 위 등기의 말소를 구함.
일제시대에 작성된 양주군 별내면 임야조사부에는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지목 ‘임’, 면적 145정 4700보, 등급 ‘육’, 신고 또는 통지 연월일 1917. 10. 1., 국유사유구분 ‘국’에서 ‘사’로 정정, 소유자 또는 연고자 ‘(한자명 ○○○)’로 기재되어 있음.
망 소외 1은 1945. 3. 2. 사망하여 장남인 소외 2가 호주상속인으로서 재산을 단독상속하였고, 소외 2는 1962. 11. 7. 사망하여 선정자들이 민법상 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함.
피고는 1917년 이전부터 현재 위치에 존재하였고, 이 사건 부동산은 위 종토를 둘러싸고 있는 토지로 사찰 건립 당시부터 피고가 사용하며 점유하여 왔으므로, 등기부취득시효 또는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어 이 사건 소유권보존등기는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라고 주장함.
피고는 1962. 12. 26. 전통사찰보존법에 따라 전통사찰로 등록을 마쳤으며, 등록 당시 창립연월일을 1794년으로 밝힘.
피고의 주된 부속건물인 대웅전 등은 (주소 2 생략) 종교용지 2,036㎡ 지상에, 요사채 등은 (주소 3 생략) 종교용지 387㎡ 지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사건 부동산은 위 2필지의 종교용지를 둘러싸고 있는 토지임.
이 사건 부동산 지상에는 피고의 창고 등 공작물 4채와 피고 소속 승려들이 경작하는 밭이 여러 군데 위치하며, 경사가 있는 부분을 통행할 수 있도록 피고가 설치한 계단이 있음.
이 사건 부동산은 수락산 중턱에 위치하여 접근이 어렵고, 주위에 피고 소속 승려들을 제외한 거주자가 전혀 없으며, 등산객 및 피고의 신도들을 제외하고는 통행하는 사람도 거의 없음.
핵심 쟁점, 법리 및 법원의 판단
1. 망 소외 1의 이 사건 부동산 원시취득 여부
법리: 구 조선임야조사령 시행 이전에 작성된 임야조사부의 국유·사유 구분란에 ‘국’으로 기재되었다가 ‘사’로 정정되고 정정인이 찍혀 있으며, 비고란에 ‘지적계출 없음’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경우, 사인은 그 임야를 사정받은 것으로 보아야 함.
법원의 판단: 이 사건 임야조사부의 기재에 따르면 망 소외 1은 1917. 10. 1.경 이 사건 부동산을 사정받아 그 소유권을 원시취득하였다고 판단함. 따라서 피고의 소유권보존등기는 권리의 추정력이 소멸되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원인 무효인 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봄.
법원의 판단: 이 사건 부동산의 위치 및 이용관계, 피고 부속건물들의 위치 및 피고 소속 승려들의 토지 이용 현황, 피고의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보존등기 및 전통사찰 등록 시기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는 적어도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치고 전통사찰로 등록을 마친 1962. 12. 26.경부터 이 사건 부동산을 점유하여 왔다고 봄이 상당함. 피고의 위 점유는 소유의 의사에 기하여 평온·공연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추정을 번복할 만한 자료가 없음. 따라서 1962. 12. 26.부터 20년이 경과한 1982. 12. 26.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함. 이에 따라 피고의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보존등기는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이므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단함.
참고사실
피고는 망 소외 1이 친일활동으로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하였으므로 원고의 소는 부적법하다고 주장하였으나, 망 소외 1이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어 위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됨.
피고를 소개한 문헌에는 피고가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나 확인할 자료는 없으며, 1709년(숙종 35년) 문헌에 ‘내원암’이라는 사명이 처음 명기되었고, 1794년(정조 18년) 칠성각을 짓고 관음전 어필을 하사받았다는 기재가 있음.
1955년 주지 소외 8이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칠성각·대방·요사 등을 중건함.
검토
본 판결은 구 조선임야조사령에 따른 임야 사정의 법적 효력과 부동산 점유취득시효의 요건 및 적용에 대한 중요한 사례를 제시함.
임야조사부의 기재만으로 소유권 원시취득이 인정될 수 있음을 확인하면서도, 실제 점유 및 이용 관계를 통해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함.
특히, 사찰과 같이 오랜 기간 특정 부동산을 점유하고 이용해 온 경우, 소유권보존등기 및 전통사찰 등록 시점을 기준으로 점유취득시효의 기산점을 인정하여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등기의 유효성을 인정한 점이 주목할 만함.
친일재산 관련 본안전 항변에 대해, 단순히 친일활동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재산 취득의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하여, 친일재산 환수의 법적 요건이 엄격함을 시사함.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
원고(선정당사자)
원고(선정당사자) (소송대리인 동방종합 법무법인 ○당변호사 ○○○)
피고
대한불교조계종 내원암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수 담당변호사 ○○○○ ○○)
변론종결
2005.12.9.
주 문
1. 원고(선정당사자)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선정당사자)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피고 대한불교조계종 내원암은 원고(선정당사자, 이하 ‘원고’라 한다)에게 남양주시 (주소 1 생략) 임야 147,967㎡에 관하여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등기소 1957. 1. 16. 접수 제297호로 마친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라.
이 유
1. 기초사실
남양주시 (주소 1 생략) 임야 147,967㎡(이하 ‘이 사건 부동산’이라 한다)에 관하여 1957. 1. 16. 피고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마쳐진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등기소 위 일자 접수 제297호. 이하 ‘이 사건 소유권보존등기’라 한다).
2. 본안전 항변
피고는, 망 소외 1은 구한말부터 적극적으로 친일활동에 가담하여 한일합방 당시 조선총독부로부터 작위 및 은사금을 받기도 하였고, 한일합방 후에도 지속적으로 친일활동을 벌였으며, 이 사건 부동산은 망인이 위와 같은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재산인바, 망인의 상속인들인 선정자들이 위와 같이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재산에 관한 보호를 구하는 것은 헌법 전문의 내용, 신의성실의 원칙, 정의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어 원고의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망 소외 1이 1917. 10.경 이 사건 부동산을 사정받아 원시취득한 사실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으나, 을 제1호증의 1, 2, 을 제2 내지 4호증의 각 기재만으로는 망 소외 1이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위 주장은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3. 본안에 관한 주장 및 판단
가. 청구원인에 대한 판단
(1) 원고는, 이 사건 부동산은 선정자들의 조부 또는 증조부인 망 소외 1(한자명 ○○○)이 1917. 10. 1. 사정받아 소유권을 취득한 후 그 상속인 소외 2(한자명 △△△)를 거쳐(소외 1은 1945. 3. 2. 사망) 1962. 11. 7. 소외 2의 사망으로 그 상속인인 선정자들이 별지 선정자 목록 기재와 같이 지분소유권을 취득한 재산임에도, 6·25 사변으로 등기부가 소실되어 피고가 권원 없이 이 사건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는바, 원인 무효인 위 등기의 말소를 구한다고 주장한다.
(2) 갑 제5호증의 1, 갑 제6호증의 1 내지 4, 갑 제7호증의 1 내지 3, 갑 제8호증의 1 내지 5, 갑 제9호증의 1 내지 3, 갑 제10호증의 1 내지 4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 사실이 인정된다.
(가) 일제시대에 작성된 양주군 별내면 임야조사부에는,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아래와 같은 기재가 포함되어 있다.
① 지목 : ‘임’
② 면적 : 145정(정) 4700보(보)
③ 등급 : ‘육’(사각형인 해당 기재란의 오른쪽 상단에 ‘하’자가 가필되어 있다)
④ 신고 또는 통지 연월일 : (대정) 6년(1917년) 10월 1일
⑤ 국유사유구분 : 수기로 기재된 ‘국’자 위에 내용을 알아볼 수 없는 인장이 날인되어 있고, 사각형인 위 해당란 오른쪽 상단에 ‘사’자가 기재되어 있다.
⑥ 처분견입 : 수기로 기재된 ‘대무’ 위에 내용을 알아볼 수 없는 인장이 날인되어 있다.
⑦ 소유자 또는 연고자 : (주소) ‘경기도 경성부 사직동’ (씨명) ‘(한자명 ○○○)’
⑧ 비고 : 기재 없음
(나) 소외 1은 1945. 3. 2.경 사망하여 장남인 소외 2가 호주상속인으로서 그 재산을 단독상속하였고, 소외 2가 1962. 11. 7. 사망하여 당시 시행되던 민법에 정한 상속분에 따라 선정자들이 아래와 같은 지분 비율로 그 재산을 공동상속하였다.
① 선정자 4, 선정자 3 : 각 1,638/21,294 지분 상속
② 소외 3이 1953. 6. 20. 사망하여 원고(선정당사자) 4,212/21,294 지분, 선정자 2 702/21,294 지분 대습상속
③ 소외 4가 1999. 3. 9. 사망하여 선정자 10, 선정자 11, 선정자 9, 선정자 8이 각 819/21,294 지분 상속
④ 소외 5가 1996. 7. 30. 사망하여 선정자 12(처) 1,092/21,294 지분, 선정자 13, 선정자 14, 선정자 15 각 728/21,294 지분 상속
⑤ 소외 6 1999. 11. 17. 사망하여 선정자 16(처) 756/21,294 지분, 선정자 17, 선정자 18, 선정자 19, 선정자 20, 선정자 21 각 504/21,294 지분 상속
⑥ 소외 7 1999. 9. 20. 사망하여 선정자 5(처) 1,404/21,294 지분, 선정자 6, 선정자 7 각 936/21,294 지분 상속
(3) 구 조선임야조사령(1918. 5. 1. 제령 제5호, 폐지)의 시행 이전에 작성된 임야조사부의 국유·사유 구분란에 ‘국’, 소유자 또는 연고자란에 사인의 이름이 기재되었다가 위 ‘국’이 ‘사’로 정정되고 정정인이 찍혀 있으며, 그 비고란에 ‘지적계출 없음’이란 뜻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경우, 위 사인은 그 임야를 사정받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3다49627 판결 등 참조).
위 법리와 인정 사실에 의하면, 선정자들의 조부 또는 증조부인 망 소외 1은 1917. 10. 1.경 이 사건 부동산을 사정받아 그 소유권을 원시취득하였다고 할 것이어서, 위 부동산에 관하여 마쳐진 피고의 이 사건 소유권보존등기는 그 권리의 추정력이 소멸되었으므로,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부동산을 공동상속한 원고에게 원인무효인 위 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의 시효취득 주장에 대한 판단
(1) 피고는, 피고 사찰은 1917년 이전부터 현재 위치인 (주소 2 생략)에 존재하고 있었고, 이 사건 부동산은 위 종토를 둘러싸고 토지로 사찰 건립 당시부터 피고가 사용하며 점유하여 왔으므로, 적어도 피고가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친 1957. 1. 16.경부터 10년이 경과한 시점에 등기부취득시효가 완성되었거나, 20년이 지난 시점에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어 이 사건 소유권보존등기는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라고 주장한다.
(2) 을 제5호증, 을 제6호증의 1, 2, 을 제7호증의 1 내지 19, 을 제8호증의 2, 을 제9호증의 1 내지 3, 의 각 기재 및 영상, 이 법원의 현장검증 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① 피고를 소개한 문헌에는 “피고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나 확인할 자료는 없다.”, “1709년(숙종 35년) 이희조의 ‘서아배수락산시후’에 처음으로 내원암이라는 사명(사명)이 명기되어 있다.”, “1794년(정조 18년)에 칠성각을 짓고 관음전 어필을 하사받았다.”, “1955년 주지 소외 8이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칠성각·대방·요사 등을 중건하였다.”는 취지의 기재가 있는 사실, ② 피고는 1962. 12. 26.경 전통사찰보존법에 따라 전통사찰로서 등록을 마쳤는데, 등록 당시 창립연월일을 1794년으로 밝힌 사실(등록번호 제19호, 주지의 성명 소외 9), ③ 피고의 주된 부속건물인 대웅전을 비롯한 요사채 2채 등은 (주소 2 생략) 종교용지 2,036㎡ 지상에 위치하고 있고, 요사채 1채 등은 (주소 3 생략) 종교용지 387㎡ 지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사건 부동산은 위 2필지의 종교용지를 둘러싸고 있는 토지인 사실, ④ 이 사건 부동산 지상에는 피고의 창고 등 공작물 4채와, 피고 소속 승려들이 경작하는 밭이 여러 군데 위치하고 있고, 경사가 있는 부분을 통행할 수 있도록 피고가 설치한 계단이 있는 사실, ⑤ 이 사건 부동산은 수락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약 30분 가량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하여야 하고, 그 주위에 피고 소속 승려들을 제외한 거주자는 전혀 없으며, 등산객 및 피고의 신도들을 제외하고는 통행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사실이 인정된다.
(3)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알 수 있는 이 사건 부동산의 위치 및 이용관계, 피고 부속건물들의 위치 및 피고 소속 승려들의 토지 이용 현황, 피고의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보존등기 및 전통사찰 등록 시기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는 적어도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치고 전통사찰로서 등록을 마친 1962. 12. 26.경부터는 이 사건 부동산을 점유하여 왔다고 봄이 상당하고, 피고의 위 점유는 소유의 의사에 기하여 평온·공연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추정을 번복할 만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4) 따라서 적어도 1962. 12. 26.부터 피고가 이 사건 부동산을 소유의 의사로 평온·공연하게 점유하여 옴으로써 위 시점으로부터 20년이 경과한 1982. 12. 26.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보존등기는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라고 할 것이어서, 이를 지적하는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있고, 원고의 주장은 결국 이유 없음에 귀착된다.
4. 결 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