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제10민사부
판결
원심판결제1심 서울민사지방법원(67가12794 판결)
환송판결대법원(1970.9.22. 선고 70도1416 판결)
주 문
(1)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 다만 청구취지의 변경으로 원판결 제1항 중 「1967.10.7. 본원 등기과 접수 제5846호」를 「1967.10.10. 서울민사지방법원 접수 제25864호」로 변경한다.
(3) 소송 총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청구취지
원고 소송대리인은 당심에서 청구취지를 변경하여 주문과 같은 판결을 구하다.항소취지
피고 소송대리인은 원판결을 취소한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1, 2심 모두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라는 판결을 구하다.이 유
1. 본안전 항변에 관하여 살핀다.
피고 소송대리인은 원고 와룡암은 불교사찰이로되 불교재산관리법상 등록되지 아니한 것으로서 독립한 불교단체가 아니므로 당사자 적격이 없으며, 또 가사 원고 와룡암이 독립한 사찰이라 하더라도 원고의 대표자라고 하는 소외 1은 불교재산관리법에 의해 주지(주지)의 등록을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소외 1은 원고 와룡암을 대표할 대표권이 없다 할 것이니, 원고의 이건 소송은 부적법하므로 소의 각하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함에 대하여 원고 소송대리인은 이를 다투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 원고 와룡암의 성격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당초 원고는 1967.12.15.자 원심 제2차 변론기일(소장진술) 1968.3.21.자 같은 제4차 변론기일에서 원고 와룡암이 불교재산관리법에 의하여 등록된 것은 아니지만 불교사찰이라 자백하였다가 같은 해 7.15. 이사건 원심 제9차 변론기일에 준비서면진술로서 불교단체가 아니라고 위 자백을 취소하는 듯한 주장을 하고 있는바 이는 이건에 있어서 당사자능력에 관한 문제이고 소송요건으로서 직권조사 사항이라고 할 것이니 위 자백이나 이 취소의 효력을 가릴 필요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에 직권으로 살핀다.(위 선행적 자백이 착오에 인한 것이고 진실에 반하는 것임은 뒤에 인정하는 사실에 비추어 명백하다)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21호증(등기필권리증) 방식과 취지에 의하여 공증인이 직무상 작성한 문서이므로 그 진정성립이 추정되는 을1호증(각서) 변론의 전 취지에 의하여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갑2호증(사령장)의 각 기재 및 원심증인 소외 2, 3, 원심 및 환송후 당심증인 소외 4, 환송전 당심증인 소외 5(단 일부) 원심 및 환송전후 당심증인 소외 6의 각 증언과 당심에서의 소외 1에 대한 본인 심문결과와 원심 및 환송전 당심의 각 검증결과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원래 와룡암은 이태조가 한양천도 후에 기도드렸다는 전설이 있는 곳에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전 망 소외 7을 비롯하여 몇몇 사람들이 중국 삼국시대의 제갈공명선생(와룡선생)의 공덕을 숭상하여 그의 신상을 모셔놓고 기도와 치성을 드리고자 모여서 와룡당을 창건한데서부터 출발하여 와룡묘, 와룡암으로 호칭이 변경되면서 발전되어 왔는바, 그 발전경위를 보면 위 일시에 창건이래 계속 와령선생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뜻을 같이하여 그곳에서 기도와 치성을 드려오다가 1924.10.경 화재를 만나 당시 치성소였던 와룡당이 전부 소실됨에 기도와 치성을 드리는 신도들의 성금으로 다시 새로운 치성소를 축조하게 되었던 바, 이 또한 6.25.사변을 만나 대부분 소실됨에 신도들의 치성금과 시주금으로 수차 신축 및 보수를 하여 현재 원고 와룡암의 치성을 드리는 시설로서 별지목록기재와 같이 정각(와룡선생을 모시는 곳), 객실, 삼성각(유비선생을 모시는 곳), 법당(부처님 모시는 곳)등의 건물이 생긴 사실, 한편 원고 와룡암은 일제 말기에 이르러 와룡선생만을 봉사한다는 것은 일종의 미신이라고 하여 당국으로부터 폐쇄의 위협을 받게 됨에 이를 회피할 목적으로 그 일각에 법당을 설치하여 부처님도 표면적으로 모시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그 후에도 계속 와룡선생을 모셔왔던 것이며, 따라서 이 때문에 사찰로서 변질된 것은 아닌 사실, 치성을 드리는 신도들은 그때 그의 가입, 탈퇴 등으로 다소간의 증감은 있었던 것이나 창건시에 소수의 몇명에서 점차 불어나서 4,50명을 헤아리다가 현재 2,300명 내외를 이루고 있고, 이들은 매월 1일과 15일에 정기적으로 기도와 치성을 드리고 있으며, 1963년에 이르러서는 원고 와룡암이 부동산등기법 30조에 의하여 법인격없는 단체로 취급받아 그 치성과 기도를 드리기 위한 시설인 이건 건물들을 그 명의로 등기부상 등재하여 이를 영구보존하고, 타에 처분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한 사실, 원고 와룡암의 제사의 주관 및 재산의 관리는 때로 속칭 주지라고도 불렀지만 승려가 아닌 이른바, 시봉자(시봉자)에 의하여 행해져 왔는데 당초의 시봉자는 망 소외 7이었고, 이를 거쳐 1940여년경부터는 망 소외 8에게 승계되고 1957년에 이르러 소외 2가 고령으로 직책을 감당할 수 없게 됨에 실질적으로 시봉장의 지위를 그 아들 소외 1에게 인계하고 낙향하고 손을 떼었던 사실, 그 뒤에 있어서도 소외 2가 때로 와룡암의 대표자 역할을 하였지만 그것은 부자관계라는 동양적 윤리 때문에 아들이 그 아버지에 대한 예우에 지나지 않은 것이고, 소외 1이 실질적인 대표자로서 제사의 주관은 물론 이건 건물에 대한 등기필권리증(갑21호증)의 소지등, 재산을 관리하여 왔던 것이며, 따라서 소외 1은 와룡암 신도들에 의하여 아무 이의없이 대표자로 추대되어 이건 제소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었고, 1967.4.7. 대처승의 종단인 불교조계종 종정으로부터 소외 1이 주지의 임명을 받은바 있지만 이 때문에 동인이 승려로 변질된 것은 아니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반하는 듯한 을8호증, 같은 10호증의 각 기재와 환송후 당심증인 소외 5의 증언은 위 증거자료에 비추어 당원이 이를 믿지 아니하며 달리 피고의 전 거증으로서도 이를 뒤집을 수 없다.
과연 그렇다면 위에 인정한 원고 와룡암의 역사적 유래나 현재의 상황으로 미루어 원고 와룡암은 불교사찰로는 보여지지 아니하며, 오히려 중국의 삼국시대의 영웅 제갈공명(와룡선생의 신상을 모셔놓고, 이를 신봉하여 기도와 치성을 드리고자 하는데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으로서 출발한 이래 이들 신도들의 제사와 치성을 드리기 위한 시설(이건 건물들)은 신도들의 성금과 시주로서 유지하는 한편 실제 재산 및 제사는 속칭 주지라고도 하는 대표자 시봉자에 의하여 관리하여 오면서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신도들을 해산시키는 조치없이 와룡선생을 주로 봉사하며 현재까지 존속되어 온 일종의 토속 신교단체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원고 와룡암은 불교단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민사소송법 48조의 법인격없는 단체로서 당사자능력은 있는 것이라 할 것이며, 위 인정과 같이 소외 1이 현재의 시봉자인 이상 동인에게는 원고 와룡암을 대표할 권한이 있다고 할 것인즉 원고 와룡암이 불교사찰임을 전제로 하여 불교재산관리법에 등록되어 있는 불교단체가 아니므로 당사자능력이 없으며, 동법에 의하여 주지의 등록이 되어 있지 아니하므로 소외 1이 원고를 대표할 권한이 없다는 피고의 위 본안전 항변은 그 이유없이 받아 들이지 않는다.
2. 본안에 관한 판단
별지목록기재 이건 부동산에 관하여 원고가 1963.4.15. 서울 민사지방법원 등기과 접수 제15151호로서 소유권보존등기절차를 마치고 1967.10.10. 주문기재와 같이 피고명의로 증여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마친 사실은 당사자사이에 다툼이 없다.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4호증의 1 내지 3(건물소유권신청서, 인감증명원, 위임장), 같은 5호증(증명원), 같은 6호증(결의서), 같은 7호증의 1 내지 3(보증서, 각 인감증명원), 같은 8호증(와룡암 규약)의 각 기재에 원심증인 소외 4의 증언과 변론의 전취지를 모두어 보면, 1967.4.27. 망 소외 2, 소외 5, 9, 10 네사람이 모여 와룡암 규약을 작성하고, 같은해 5.2.에 이건 건물은 피고에게 증여하기로 결의한 사실, 위 결의를 원인으로 하여 피고는 그 명의로 이건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마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이 없다.
원래 원고 와룡암과 같은 신교단체에 있어서 그 치성을 드리기 위해 갖추고 있는 시설과 같은 기본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한 그 단체를 해체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것이고, 더욱이 그 재산이 신도들의 출연금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소속 신도들의 총유재산임에 비추어 반드시 신도들을 소집하여 신도들 과반수의 결의에 의하여 처분되어야 할 것이지 간부나 연고관계가 있다고 해서 몇 사람의 의사로 이를 타에 처분할 수는 없는 것이라 할 것이므로 위에 인정한 네사람의 피고에 대한 증여행위가 어떠한 연고로 이루어졌건 이는 적법한 처분행위로는 보여지지 아니하며, 따라서 이를 원인으로 한 피고앞으로의 이건 건물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는 원인무효의 등기임을 면치 못할 것인즉 피고는 원고에게 위 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피고는 원고앞으로의 이건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보존등기는 이중등기로서 무효이고, 원고는 이건 부동산의 소유권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므로 살피건대, 가사 피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미 이건 건물에 관하여 망 소외 2, 같은 금천동면(금천동면), 같은 광도민부(광도민부), 같은 금본교상(금본교상)등 네사람앞으로 1942.3.9.자 접수, 1942.2.1.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 이전등기가 경료된 사실이 있어 원고앞으로의 보존등기가 이중등기라 하더라도 위에 인정한 바와 같이 이건 부동산은 원고 신도들의 성금과 시주에 의하여 이루어진 재산으로서 원고신도들의 총유재산이라고 한다면, 원고 와룡암앞으로 된 소유권보존등기야말로 실체적인 관리관계에 부합되는 등기라고 할 것이고, 도리어 과거의 망 소외 8, 금천동면(금천동면), 같은 광도민부(광도민부), 같은 금본교상(금본교상)등 특정된 네사람의 개인앞으로 된 등기가 실체관계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인즉 피고의 위 항쟁은 주장자체로 그 이유없다고 할 것이며, 성립에 다툼이 없는 을2호증(등기부등본)의 기재와 원심증인 소외 2의 증언에 당사자변론의 전취지를 모두어 보면 위 네사람 앞으로의 등기된 건물은 이미 소실되어 버린 건물로서 이건 부동산과는 별개의 건물임이 명백하므로 피고의 위 항쟁은 어느모로 보나 그 이유가 없다.
3. 과연 그렇다면 피고에 대한 원고의 이건 청구는 그 이유있어 이를 인용할 것인즉, 이와 결론을 같이 한 원판결은 정당하다고 할 것이고 피고의 항소는 그 이유없어서 이를 기각하기로 하며 다만 원고의 이건 계쟁목적물의 표시정정으로 그 범위내에서 원판결을 변경하기로 하고 소송비용의 부담에 관하여서는 민사소송법 96조 , 89조를 적용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판사 한만춘(재판장) 권종근 이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