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이 유
상고이유를 본다.
1.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은 제1심판결 이유 중 믿는 증거에 원심 증인 소외 1의 증언을, 믿지 아니하는 증거에 을 제9호증의 기재와 원심 증인 소외 2의 증언을 더하는 것 이외는 제1심판결을 그대로 인용하였는바, 제1심은 갑 제1호증(등기부등본), 갑 제3호증(종중등록증명서), 갑 제4호증의 1(임시총회회의록), 2(통지서), 갑 제5호증의 1,3(각 제적등본), 2,4내지 8(각 호적등본), 갑 제6호증(임야대장등본), 갑 제8호증의 1,2(고성이씨세보 표지 및 내용), 갑 제9호증의 1,2,3(금전출납부 표지 및 내용, 동번역문), 갑 제10호증(지방세목별 과세증명원), 갑 제11호증의 1,2(각 종합토지세과세내역서), 갑 제12호증의 1 내지 6(각 재산세납부증), 갑 제17호증(회의록)의 각 기재, 제1심 증인 소외 3, 소외 4, 소외 5의 각 증언(다만 소외 5의 증언 중 믿지 아니하는 부분 제외)과 현장검증결과 및 측량감정결과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여 바로 원고 종중이 경북 청도군 ○○면 △△리 (지번 1 생략) 임야 3정 7단 6무보(이하 이 사건 임야라고 한다)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실과 1917.11.1. 토지사정 당시에 편의상 이 사건 임야는 원고 종중의 시조인 소외 6의 2대손으로 장남인 소외 7의 9대손인 소외 8 명의로 이 사건 임야에 인접한 위 (지번 2 생략) 임야는 소외 6의 2대손으로 차남인 소외 9의 9대손인 소외 10 명의로 각 사정받게 함으로써 이 사건 임야를 위 소외 8에게 명의신탁한 사실등을 인정한 후, 이 사건 소장송달로써 위 명의신탁이 해지되었다 하여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2. 채증법칙 위배의 점에 대하여
무릇 이 사건에서와 같이 어떤 임야가 종중의 소유인데 사정 당시 종원 또는 타인 명의로 명의를 신탁하여 사정을 받은 것이라고 인정하기 위하여는 사정당시 그 주장과 같은 어느 정도의 유기적 조직을 가진 종중이 존재하였을 것과 그 임야가 종중의 소유로 된 과정이나 내용이 증명되거나 또는 종중 시조를 중심으로 한 종중 분묘의 설치방법이나 임야관리 상태등 기타 여러 정황 등에 미루어 사정(사정) 이전부터 종중 소유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많은 간접자료가 있을 때 한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을 뿐이고, 그와 같은 자료들이 충분히 증명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반대되는 사실의 자료가 많을 때에는 이를 인정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제1심 거시증거와 원심이 추가한 증거를 종합하여 살펴본즉, 위 각 증거 중 이 사건 임야가 토지사정 이전부터 원고 종중 소유였다는 증거는 이 사건 임야는 원고 종중 소유라고 들어서 안다는 제1심 증인 소외 3과 원심 증인 소외 1의 각 증언이 있을 뿐인데, 그와 같은 막연한 증언만으로는 이 사건 임야가 원래 원고 종중 소유였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나머지 증거들로는 원고 종중이 적어도 1949년경 부터 사실상 이 사건 임야를 다른 종중재산과 함께 관리하여 왔고 이 사건 임야에 대한 세금도 부담하여 온 사실 등은 엿볼 수 있지만, 위와 같은 사실만으로는 다음에 인정하는 반대사실들과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임야가 토지사정 이전부터 원고 종중 소유였는데 사정 당시 위 소외 8에게 명의신탁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진다.
원심이 배척하지 않은 증거들을 기록에 의하여 살펴본즉 이 사건 임야에는 이건 원고종중의 시조인 망 소외 6의 2대손인 망 소외 7의 분묘가 설치되어 있고, 바로 위 토지와 인접한 (지번 2 생략)에는 위 소외 7의 동생인 망 소외 9의 분묘가 설치되어 있는데 위 (지번 2 생략)에는 망 소외 9의 후손들의 분묘들만 주로 설치되어 있고, 이 사건 임야 지상에는 근년에 와서 설치된 위 소외 9쪽의 후손 소외 3 근친들의 분묘를 제외하고는 모두 망 소외 7의 후손들의 분묘만이 설치되어 있고, 위 소외 3의 근친 분묘들이 설치된 것에 대하여는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망 소외 7의 후손인 피고들이 반대하여 분쟁이 생긴 사실이 있는 점, 이 사건 임야에 설치된 망 소외 7의 분묘에는 상석이 있을 뿐 다른 석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그 후손들의 분묘에도 아무런 석물이 설치되어 있지 않음에 비하여 인접 토지에 설치된 망 소외 9의 분묘에는 위 소외 9가 소외 7의 동생인데도 상석외에 석주와 비석, 망부석 등의 석물이 설치되어 있고, 그 후손들의 분묘에도 같은 형식의 많은 석물들이 설치되어 있는 바, 위 토지가 원고 주장처럼 원고 종중에서 함께 관리하는 원고 소유의 종중 임야라고 한다면 오히려 연고항존자(년고항존자)이고, 원고 문중의 종손인 소외 7의 분묘 및 그 후손들의 분묘를 더욱 돋보이게 할지언정 동생 쪽의 분묘를 형의 것에 능가하여 석물들을 훨씬 호화롭게 설치하는 경우는 재래 종중들의 묘지관리의 관습에도 반하는 것으로 보여질 뿐 아니라, 같은 종중이 관리하는 묘가 그토록 관리상태가 계통에 따라 뚜렷하게 차등을 두는 것이 극히 이례에 속하며, 또 서로 인접하여 붙어 있는 위 양 임야가 원고 주장처럼 원고 종중 소유라고 한다면 임야 사정당시에 붙어 있는 하나의 임야를 일부러 분할하여 사정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으려니와 사정 명의도 일괄적으로 종손 단독 명의 또는 종원의 수인 공동 명의로 하지 아니하고 위 임야를 2개 필지로 하여 이 사건 임야에는 위 소외 7의 9대손인 소외 8 명의로 하고, 인접한 (지번 2 생략) 임야는 위 소외 9의 9대손인 소외 10 명의로 각 사정을 받는다는 것도 극히 이례에 속하는 일인 점, 1990년경부터 소외 9의 후손인 소외 3 근친들의 분묘가 이 사건 임야에 설치되는 것을 피고들이 반대하자 소외 3은 1991.5.경 피고 1의 예금구좌에 금 8,000,000원을 입금하고 분쟁을 해결하려 하였으나 피고 1이 그 수령을 거절하자 위 돈을 되돌려 받은 사실이 있었던 점, 이어서 같은 해 10.9.경 피고측이 분묘철거를 요구하자 위 소외 3측에서 피고측에게 “이 사건 임야를 원고 종중의 종산으로 관리하되 종손을 제외하고는 후손들의 묘소로 이용할 수 없음을 원칙으로 하고, 위 소외 7의 분묘, 석물 대금조로 금 15,000,000원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약정서 기안문을 작성하여 제시하였으나 역시 거절당한 사실이 있었던 점, 이 사건 임야와 (지번 2 생략) 임야에 대하여 1970.6.20. 임야소유권이전등기에관한특별조치법(법률 제2111호)에 따른 등기를 함에 있어 이 사건 토지에 대하여도 위 소외 10의 아들 소외 11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하였다가 피고측의 항의로 같은 해 9.30. 원래 사정 명의자인 위 소외 8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어 있는 사실 등이 있는바, 이와 같은 사실들이 존재하는 것은 이 사건 임야는 인접한 (지번 2 생략) 임야와는 등기상으로나 실질적으로 그 소유를 달리하기 때문에 생겨난 일들이라고 보는 것이 경험법칙에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 임야가 그 곳에 분묘가 설치된 망 소외 7을 중심으로 한 그 후손들의 종중소유이거나 사정 명의자인 소외 8의 소유라고 인정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이 사건 임야와 인접한 (지번 2 생략) 임야가 모두 원고 종중의 소유라고 판시한 원심판결은 필시 그 채증과정에서 위와 같은 경험법칙에 부합하는 반대사실의 존재를 간과하고 증거가치가 극히 빈약한 간접증거에 의하여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채증법칙에 위배하는 위법을 범하고, 그로 인해 판결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논지는 이유 있다.
3.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원심판결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으므로 파기하고, 다시 심리 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